모기소굴. 그래도 미국 미친소는 못들어간다.

밤새 우리는 모기떼의 극성스런 공격에 잠을 설쳤습니다.
홍규형은 모기가 얼마나 쎈지 "뼈에 침을 박는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뿌옇게 밝아오는 창문으로 몰려든 모기떼는 족히 백여 마리는 되어보였고 밤새 빨아들인 피로 배가 빨갛게 부풀어 있습니다.
손을 댈때마다 터지는 선혈!
모기떼를 방에 가두고 우리가 밖에서 자는 것이 옳았겠습니다.  




'대왕수'라 일컫던 노천 목욕탕에서 아침목욕


집을 나선 우리는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놈들과 주민들이 일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로 갔습니다.
한사람이라도 더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놈들의 속셈과 강정마을의 투쟁을 알아야 한다는 제주도 동지들의 안배 때문입니다.
집집마다 내걸린 깃발과 벽화가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벌이던 부안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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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건설반대 다음 카페http://cafe.daum.net/peacekj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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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건설반대 다음 카페http://cafe.daum.net/peacekj에서.



대책위 본부로 쓰이고 있는 강정마을 회관에서는 일요일 이른 아침임에도 강정마을 대책위 사람들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막걸리를 반주 삼아 아침을 먹습니다. 무우를 채썰어넣고 끓인 된장국이 시원하게 숙취를 다스려줍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여론동향과 반대투쟁의 활로를 둘러싼 여러 고민거리들을 듣습니다.
우리는 주로 고창, 부안, 군산 등지에서 전개되었던 핵폐기장 반대투쟁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십수년간의 투쟁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고도화되는 놈들의 공작과 국가권력에 의해 부안 투쟁을 끝으로 패배로 종결된 쓰라린 경험.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주민투표 실시'라는 주민운동의 요구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그로 인해 지난 십수년간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는 시도 자체로 거대한 분노와 저항을 불러 일으켰던 군중투쟁의 에네르기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소진되어버렸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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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앞 창고의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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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건설대상지. 강정 포구. 한라산이 구름에 덮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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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가 열리던 하례초등학교

우리는 강정을 떠나 오름에 오르기 위해 표선면으로 갑니다.
가는 길목 전농 제주연맹 사무처장이 있다는 '리민 체육대회'가 열리는 초등학교에 들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평소 잔치때 만들어 먹는 제주도 음식의 본질맛과 대면하였습니다.
갓 잡아올린 고등어를 썰어놓은 회는 어젯밤 횟집의 고등어와 비교조차 할 수 없었고, 본래 무우청을 썰어넣어야 하나 제철이 아닌지라 배추를 넣어 끓였다는 도새기탕은 보기와 다르게 시원하기 그지 없습니다.
생선구이 한토막, 젓갈 한가지에도 제주도만의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그 외에 전라도에서 '회평'이라고 말하는 무침도 있었고 종류가 다양하였으나 감격에 겨운 흥분으로 정신이 혼미해져버린 탓에 기억이 제대로 나질 않습니다.
운전병이라는 신분도 망각한 채 소주를 다섯잔이나 마시고 말았습니다.

다시 길을 달려 당도한 곳은 오늘과 내일 우리를 책임질 새로운 제주도 동지가 기다리고 있는 표선면 가시리.
더할가에 때시. 마을 이름이 꽤 운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이 지니고 있는 4.3항쟁과 관련된 상처의 깊이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것입니다.
소개 후 다시 마을이 재건되었으나 그 규모는 4.3항쟁 이전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고 마을 어른들의 제사는 이틀 사이에 모두 몰려 있다 합니다.
새로 만난 제주도 사람들 술 한잔 하는 동안 외지에서 온 우리는 길 한복판에 있는 팽나무 아래 쉼터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기를 두시간여, 눈을 뜨니 3시가 되어갑니다.
이제 오름에 오를 시간입니다. 정석 항공관 옆에 있는 '큰사슴이오름'.
그러나 날씨가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습니다.
불구하고 오르기를 20여분, 우리는 이내 오름의 정상에 당도합니다. 그러나 사위는 어둡고 잡목이 시야를 가려 시원한 풍광을 볼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지난봄 올랐던 따라비오름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사진집에서 본 오름의 '선'에 반하여 기대를 잔뜩 해온 홍규형이 실망이 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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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슴이오름. 찍은이 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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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특산식물 '야고'. 뒤에 보이는 사람이 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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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에 다녀온 우리는 하루밤 묵을 집으로 갑니다. 빈집을 치우고 깃들어 살던 사람이 잠시 육지에 나가 있어 다시 비어 있는 집이라 하는데 그 이가 쓰던 세간살이는 물론 이부자리까지 고스란히 펴져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연이어 마신 술이 거의 독이 되어 누울 자리만 보이면 맥없이 픽픽 쓰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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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196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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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전형적인 톨담길이라 한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풀이 수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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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집. 주인은 '생명' '평화'라는 글씨만 줄창 써대다 그대로 출타하셨다.


가시리는 돼지고기가 유명하다 합니다.
자그마한 마을에 돼지고기를 다루는 식당이 여렷 있는데 그 중 한집은 도 내에서 유명하며 그 집의 유명세에 따라 인근 식당들이 생겨났다 합니다.
한참을 쓰러져 있던 사람들 다시 일어나 순대국수로 속을 풀고 머리고기를 시켜 한라산 하얀 소주로 목을 축입니다.
한라산 하얀 소주는 20도를 밑도는 요즘 소주와 다르게 21도로 다소 높은 도수를 유지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이 좋습니다.
오늘 저녁은 어떻게 술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이..
골골 하던 영태는 그렇다 치고 홍규형이 드디어 뻗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말고기를 사다 구워먹는데 맛이 영 나지 않습니다.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살짝 구워 핏기도 가시지 않은 고기가 입안에서 살살 녹던 지난 겨울 말고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또 이렇게 술과 함께 저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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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 위의 말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