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
메밀국죽, 국과 죽의 경계에 머물다.
메밀국죽, 국과 죽의 경계에 머물다.
2021.10.22의문의 배앓이 이후, 나았다고는 하나 여파가 있다. 굶는 게 가장 편할 듯 하나 뭐라도 먹는 쪽으로 결정하고 속 편할 음식을 찾는다. "메밀국죽 먹어요"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나에게는 메밀쌀이 있다. 메밀쌀 살포시 두 주먹 집어 열심히 조랭이질, 정선된 메밀쌀은 흡사 싸레기다. 메밀을 껍질째 삶아서 다시 딱딱하게 말려 도정한 것이라 했다. 하여 요즘 시판되는 메밀쌀과는 많이 달라보인다. 이 메밀쌀 두 줌에도 정선 농민의 땀이 배어 있다. 멸치 다시물 만들어 메밀쌀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물은 과도하게 많다 싶을 정도가 적당하다. 된장 아까라 말고 한 숟가락 담뿍 떠 넣는다. 된장 만으로 간을 하니 감이 중요하다. 열심히 끓이다가 메밀쌀이 부풀어 퍼질 무렵 약간의 묵은지, 청양고추, 대파를 썰어 넣는다..
미안하다, 넓적부리도요
미안하다, 넓적부리도요
2021.10.08음력 9월 초이틀 여덟물, 지난번 사리 때보다 물이 높다. 물을 텀벙거리며 갯등에 들어간다. 갯등은 좁아졌지만 새들이 줄어들어 자그마한 갯등이 황량해 보일 지경이다. 막차 탄 녀석들이라서일까? 이리저리 날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정신이 없다. 배터리 잔량 18%에 메모리 카드도 없는 카메라를 메고 들어왔다. 다행히 배낭 속에 여분의 카드가 있다.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넓적부리도요를 찾는다. 온몸이 새하얗게 보이는 깔끔한 세가락도요 무리를 주시한다. 녀석들은 주로 파도의 끝자락에서 파도와 노닐며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언뜻 넓적부리도요가 눈에 들어왔지만 쌍안경을 떼고 카메라를 들면 사라진다. 녀석의 위치를 추적하고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그러는 동안에도 녀석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배터리 없..
장칼국수 말고 장국수
장칼국수 말고 장국수
2021.10.07날이 꾸무럭하니 장칼국수를 먹고 싶은데 칼국수를 만들 재간은 없고 냉장고에 생면은 있다. 칼국수나 국수나 다 같은 밀가리 것이니 뭐 거기서 거기겄지. 장국을 먼저 만들고 국수를 넣으면 그게 장국수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먼저 멸치 다시물에 양파 작은 것 하나, 양송이 두 개. 콩나물 반 주먹.. 더 넣을 게 없네. 이제 생면을 넣고 고추장과 된장으로 간을 한다. 고추장은 매콤함과 달콤함을, 된장으로는 간을 맞춘다. 고추장을 한 숟가락 넣었다면 된장은 반 숟갈 정도.. 조리 시간이라야 물 끓는 시간, 국수 삶아지는 시간.. 나는 이런 간편한 음식이 좋다. 잠깐 사이 뜨끈하고 국물 걸죽한 장국수가 만들어졌다. 늘 양 조절에 실패하지만 남기는 법은 없다. 요즘 부쩍 밀가리 것이 땡긴다. 살찔까 걱정이지만 다시 ..
가을엔 국수를..
가을엔 국수를..
2021.10.03가을이다. 나는 당산나무 아래 앉아 있다. 들판은 황금빛,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온다. 들판 너머 두승산이 둥실 솟았다. 잔디밭 가상자리 호박 두 덩이 넝쿨째 들어왔다. 엊그제만 해도 영락 없는 애호박이었는데 며칠 사이 몰라보게 컸다. 비가 내린 탓이다. 호박 한 덩이 따 들고 생각한다. 어찌 먹어야 하나? 나는 국수를 좋아한다. 더구나 가을이니 국수가 좋겠다. 멸치 국물에 새우젓 간, 호박 썰어 넣고 마른 새우에 청양고추로 풍미를 더한다. 냉장고에 생면이 있다. 면은 따로 삶아 찬물에 가신 후 끓는 국물에 풍덩.. 상이 차려졌다.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칼국수 면이라야 했는데 아쉽다. 그래도 맛있다. 잘 먹었다. 이렇게 끼니 하나를 해결한다.
만돌 갯등 도요물떼새
만돌 갯등 도요물떼새
2021.10.02음력 날짜에 6을 더한 다음 15로 나누고 남은 나머지 숫자를 헤아려 한물, 두물, 세물 헤아리는데 일곱물, 여덟 물일 때 물이 가장 높고 간만의 차가 커 이때를 사리라 한다. 반대로 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때를 조금, 그 이튿날을 무시라 하는데 열네물, 열다섯물이 이에 해당한다. 보름이나 그믐 2~3일 뒤 바닷물이 가장 높게 들어와 갯벌의 대부분을 바닷물이 삼키게 되는데 이때에도 잠기지 않는 갯땅에 있어 갯벌을 누비던 온갖 새들이 이곳에 모여든다. 일시적으로 작은 섬이 되는 이 갯등에 들어가려면 시간을 잘 맞촤야 한다. 음력 8월 열이렛날 나는 갯등에 들어갔다. 갯등에 들어가 가장 먼저 대면한 것은 마도요와 알락꼬리마도요 무리, 녀석들은 잘 구분되지 않는 외모로 섞여 있다. 일단 배 부위가 하얗게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