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투쟁으로 이번 만큼은 농산물 제값 받아내겠다”

[인터뷰]22일 전국농민대회 앞둔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입력 2013-11-19 23:46:58l수정 2013-11-20 09:25:56

한 차례 연임을 거쳐 다음 달 말이면 4년의 임기를 마치는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 일 년에 한 번 농민들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를 앞두고 카톨릭 신자인 이 의장은 얼마 전 순교 성지를 다녀왔다며 ‘순교자의 정신’을 말했다.

한편으로는 ‘유신독재 부활’이 회자되는 정권의 위압적인 태도가 강화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농산물의 생산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농민의 처지가 반복되고 있다. 투쟁도 만만치 않지만 투쟁하지 않으면 농업을 접어야 하는 ‘한계상황’이라는 말을 그는 무겁게 반복했다. 

이 의장은 “농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한판 큰 투쟁을 해야 한다”고 절박하고 비장하게 말했다.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김철수 기자




8년 동안 동결된 쌀 목표가격 17만83원...생산비에도 못 미쳐

올해 정기국회에서는 향후 5년간의 쌀 목표가격을 정하게 된다. 과거 수매가격에 해당하는 쌀 목표가격은 산지 전국평균 쌀값이 이보다 낮을 경우 차액의 85%를 정부에서 보전해 주는 기준선이다. 이 제도가 쌀 변동직불금제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80kg 한 가마니당 17만83원이 목표가격이었다. 정부의 내년 목표가격안은 17만4천83원이다.

농민들은 해마다 뛰는 생산비와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목표가격을 23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위원장인 최규성 민주당 의원과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은 21만원 선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광석 의장은 “정부와 농민이 계산하는 쌀 생산비가 너무 차이난다”며 “양측이 함께 쌀 생산비를 산출하자고 농림부에 제안했으나 통계청에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장은 “농림부 말대로 쌀 생산비가 보장된다면 취업난도 극심한데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몰려와야 하지 않느냐”며 “정부는 눈에 보이는 현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국정감사에서 이동필 농림부 장관은 “쌀 변동직불금 제도는 급격한 쌀값 하락을 보완하는 안전망”이라며 “정부가 제시한 목표가격은 생산비보다 높아 추가 인상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해 야당과 농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부른 바 있다. 

이 의장은 문제의 원인으로 청와대를 지목했다. 그는 “이동필 장관이 농민들 찾아다니며 쌀 목표가격을 추가로 올리겠다고 말하고 다니다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꿨다”며 “청와대의 압력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 “농업 현장의 분노가 심상치 않으니까 새누리당도 17만4천원 선은 너무 낮다고 하면서도 얼마를 올리겠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눈치를 보며 새누리당과 농림부가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의장은 “새누리당 내부적으로 17만 9천원 선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이 의장은 민주당에도 쓴소리를 했다. 농해수위 소속인 민주당 김영록 의원이 ‘중재안’이라며 19만원 선을 제시해 ‘혼선’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이 의장은 “정부와 농민 사이에 새누리당이 있는 줄 알았는데 민주당이 있다”며 “민주당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라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율하려 들 것이 아니라 야당답게 농민을 대변해 싸워야 한다”며 “비록 곤욕을 치르더라도 그 과정에서 농민과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 아니겠냐”고 강조했다.

반복되는 가격폭락...새누리당 의원도 국가수매제 도입 법안 발의

이 의장은 기초농산물국가수매제의 도입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이 제도는 과거 쌀 수매와 비슷하게 기초농산물을 국가가 수매하는 제도로 지난해에는 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국민기초식량보장법안’을 발의했고 올해 10월에는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장은 “올봄에 감자를 시작으로 마늘, 양파, 고추, 고구마 등의 가격이 곤두박질쳤다”며 “모든 작물이 골고루 작황이 좋은 올해 농민들은 쌀을 비롯해 농산물의 가격 폭락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농산물 가격이 올라갈 때는 긴급조치를 취하는데 폭락에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며 “올해 전반적으로 가격 폭락을 겪으니까 농민들이 이제는 한계가 왔다고 느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때문에 여느 때보다 쌀 가격 보장 등의 투쟁에 농민들의 관심도 높다고 그는 전했다.

전농은 22일 오후 4시 서울광장에서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한다. 현장에서는 한창 참가자가 조직이 진행 중이고 이 의장을 비롯한 각급 간부들도 현장을 방문하며 조직화를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적 편차도 크고, 일부 지역에서는 조직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김철수 기자



“패배주의 넘어야 승리할 수 있다”

이 의장은 ‘패배주의’를 넘어서자고 주문했다. 그는 “박근혜 정권 들어서서 노동자고, 농민이고, 진보당이고 너무 몰아붙이니까 농민들이 기가 죽고 패배주의가 생겼다”고 진단했다.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교조 탄압을 필두로 한 정권의 ‘노동배제’는 그대로 ‘농민배제’로 이저기고 있다는 것이 전농의 판단이다. “농업을 생명산업으로 직접 챙겨서 키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을 이제는 어느 농민도 믿지 않고 있다고 이 의장은 말했다.

앞으로 5년간의 쌀값을 2008년 가격에서 가마니당 단돈 4천원을 올려주겠다는 것이나 한중FTA 1단계 타결과 TPP(환태평양경제연계협정) 가입 추진 등 가속화하는 개방 농정, 논 1헥타르당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려주겠다던 고정직불금을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80만원에 묶는 점 등이 그런 예다.

통합진보당의 시련도 농민들과 무관치 않다. 전농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농민의 정치세력화를 내걸고 배타적 지지를 해왔다. 지난해 ‘경선 부정’ 공세와 분당 과정에서도 이 의장은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며 진보당 곁을 지켰다. 다시 진보당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해산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의장은 1866년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대를 빗대어 시국을 진단했다. 그는 “배교하면 살려주고 신앙을 지키면 죽인다는 위협에도 십자가를 지킨 이들이 이어졌다”며 “나라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 평등, 통일은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한 정신이자 가치인데 이를 버리는 것은 배교와 같다”며 “선각자들이 시대정신과 가치를 지켜 양심껏 살지 않으면 성경에 나온 대로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장은 전국의 농민회원들에게 “이길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이 예년과 다른 농민들의 분위기에 여러 장의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형국”이라고 진단하며 “22일 전국농민대회, 그리고 12월 7일 민중대회에서 어떻게 싸우냐에 따라 저들이 내놓는 카드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경제규모 10위권이라고 하지만 이만한 국가 중 농업을 포기하고 남에게 맡기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우리의 투쟁으로 얼마든지 생존권을 쟁취하고 농업을 지킬 수 있다, 패배주의를 버리고 자신감을 갖자”고 회원들에게 전했다.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김철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