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쌀시장 전면개방 정지작업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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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쌀시장 전면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혀온 박근혜 정부가 이에 따른 정지작업을 전면화하고 나섰다. 9월 말 세계무역기구(WTO) 통보일정을 앞두고 이달 중으로 정부 입장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오는 20일 농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주최 관련 공청회가 예정된 가운데 지역별, 단체별 토론회, 설명회 등이 진행되고 있다.

쌀시장 전면개방을 밀어붙이는 정부 전략은 복잡하지 않다. 농식품부를 전면에 세우고 이들이 구축한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정부 입장에 반대하는 농민단체와 연대기구를 고립시키고 전면개방 불가피론을 널리 확산시키는 것이다.

농업계는 농식품부 퇴직관료들의 ‘농피아’ 천국이다. 농식품부는 산업통상자원부에 이어 4급 이상 퇴직관료의 유관기관 재취업률 2위이다. 이들은 퇴직 후 산하기관, 협회 등에 포진하여 정부의 개방농정을 막후에서 지원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관피아 척결이 얼마나 허울 좋은 거짓말인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쌀 자조금 제도 시행 등을 미끼로 한농연, 쌀 전업농 등 농민단체를 회유하여 관세화개방 불가피론을 내놓게 하였다. 이들 농민단체와 농식품부의 유착관계는 공공연하다. 이들은 지난해 쌀 목표가격 인상 투쟁 과정에서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다른 한편,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회를 내세워 전국순회 설명회를 계획하고 있다. FAO 한국협회 최용규 회장은 농식품부 관료 출신으로 우루과이라운드(UR)과 WTO 협상 당시 농업협상 대표로 참여한 전력이 있다. 전농은 농식품부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는 FAO 한국협회의 순회 설명회가 부당함을 지적하고 강행할 경우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쌀시장 전면개방은 정부의 쌀농사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급격한 작목 전환을 유발하여 재배 면적의 급감을 불러올 게 뻔하다. 이는 쌀 자급의 위기, 식량주권의 포기로 이어지게 돼 있다. 따라서 전농, 참여연대, 녹색연합, 경실련 등 46개 농민·시민단체들은 '먹거리 안전과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를 구성하고 쌀 관세화·전면개방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식량주권 차원에서 쌀의 추가 개방이 불가함을 밝히고 협상을 통해 다른 나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로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은 "쌀 관세화 유예는 한국 정부의 협상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식량주권은 세계무역기구에 우선하는 권리임을 직시하고 정부는 지금이라도 상대국과 쌀 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