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농정신문, 박홍규 농민만평




[사설] 대통령의 거짓말과 식량주권의 위기



민중의소리 

 



박근혜 대통령이 쌀 개방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의 쌀 관세화 선언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농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내용이 실로 가관이다.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대는 거짓말은 기본이고 농식품부의 발표 내용과도 충돌할 뿐 아니라 우리 농업의 현실을 무시한 허무맹랑한 말잔치로 가득하다


박 대통령은 정부가 “쌀 관세화 결정을 하기까지 농민들과 수십번 토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부는 ‘FAO 한국협회’라는 단체를 내세워 정부 입장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순회 설명회를 계획하였으나 가는 곳마다 농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쳐 모든 설명회가 무산되었다. ‘FAO 한국협회’가 국제기구인 것처럼 위장된 관변단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쌀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일방통행에 대한 비난과 함께 국민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자 당황한 정부는 급기야 비밀리에 급작스런 쌀 관세화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협상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져버린 채 아무런 대책 없는 정부 발표는 정부 입장에 동조하던 일부 농민단체마저 “대책 없는 무조건적 쌀 개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쌀 관세화가 당장 우리 농업에 부담은 되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 농업 발전의 기회가 된다”고 했다. 이는 농식품부 발표 내용과도 어긋난다. 농식품부 발표의 핵심은 쌀 시장을 완전히 열더라도 관세를 높게 책정하면 추가적인 쌀 수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말대로라면 단기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높은 관세 장벽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이다. 지속가능한 장기적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거꾸로 말하고 있다. 보고를 잘못 받았거나 쌀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 농식품을 세계시장을 겨냥한 수출전략상품으로 육성해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끝난다. 이쯤 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식량자급률이 22%대로 세계 최하위권을 맴돌고 주식인 쌀조차 자급률이 80%대에 머물고 있는 나라에서 그나마 지켜오던 쌀 시장마저 활짝 열어젖히면서 수출을 운운하다니…. 아무리 수출지상주의라지만 제 앞가림도 못하여 먹거리의 78%를 수입에 의존하고 주식인 쌀마저 자급을 못해 남의 나라 쌀을 빌어다 먹는 처지에 무슨 수출이란 말인가. 대통령의 정신이 오락가락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얘기를 잘못 들은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박 대통령의 허무맹랑하고 터무니없는 발언에서 이 나라의 식량주권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국 각지에서 잉태기에 접어든 벼가 갈아엎어지고 삭발한 늙은 농민들이 정권과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협상조차 포기하고 통째로 식량주권을 팔아넘기는 심각한 매국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 쌀밥 먹는 국민이라면 마땅히 투쟁하는 농민들에게 힘을 보태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