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우금티 전투에서 패한 전봉준 장군과 농민군은 태인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르고 군대를 해산했다. 

갑오년이 저물어가던 11월 27일의 일이다. 

그 후 전봉준 장군은 입암산성, 백양사 등을 거쳐 12월 2일 순창 피노리에서 피체되었다. 

불과 닷새동안의 짧은 기간 장군 일행의 행적은 12월 1일 하루를 제하고는 대개 밝혀져 있다. 

그 중 온전히 산길만을 걸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입암산성에서 백양사(청류암)에 이르는 길을 밟아보고 싶었다. 

꽤 오래된 숙원사업같은 것이었다. 박홍규 화백의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 판화전 '피노리 가는 길'에 함께 하면서 그 욕구는 더욱 강해졌다.   

갑오년 2갑자, 게다가 11월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어떤 경로로 입암산성에 들었을까를 가늠하고 그 길을 따르는 것이다.  

먼저 떠오른 것은 갈재를 따라 오르다 고갯마루에서 능선을 타고 넘는 길이었다. 

그 길을 가 보는디..



뒤로 보이는 능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시루봉이다. 

호남정맥에서 가지쳐나온 입암산은 시루봉에서 하염없이 몸을 낮춰 사람들에게 고갯길을 내주고 다시 방장산으로 솟구쳐올라 그 줄기를 목포 유달산까지 이어간다. 그 산줄기를 이름하여 영산기맥이라 한다. 

사진의 오른쪽 끝 부근이 갈재 고갯마루가 되겠다. 갈대가 많다 해서 갈재라 했다. 노령은 그 한자 표기이다. 

갈재에 이르는 마지막 마을 군령마을 입구에 느티나무 노거수가 버티고 있다. 

갈재에 출몰하는 도적떼로 하여 군졸들이 상주한 까닭에'군령' 마을이라 했다 한다. 

고샅길을 따라 마을을 관통하여 끝까지 올라가면 지금은 폐선이 되어 레일마저 띁겨나간 호남선 옛 철길이 나온다. 





옛 철길 주변 풍광이 삼삼하다. 

산 아래 첫동네인데도 머리 위로 철길이 뚫리고 기차들이 오갔으니 이 동네는 애들이 참 많았겠다. 

호남선이 복선화되면서 철길이 마을 아래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마을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이제는 애 만들 젊은이들이 없다. 

이 길이 갈재를 오르던 옛길은 아니겠지만 걷기에는 아주 좋다. 갈재 밑을 지나는 또 다른 터널이 나타나고 터널 못미쳐 갈재로 오르는 옛길이 나타난다. 




길은 굽이굽이 산허리를 휘감아돌며 고도를 높여간다. 한창때는 호남의 남북을 잇는 큰고개였으니 왜놈들도 이 고개에서 이름을 따 노령산맥이라는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산줄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할랑할랑 걷다보니 어느덧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개운하게 씻어준다. 고개 바로 너머에 장성에서 세운 작은 정자와 갈재에 얽힌 옛이야기를 풀어놓은 표지판이 서 있다. 표지판에 청상과부를 청산과부로 적어놓아 웃음짓게 한다. 쉬어가기 좋다.


시루봉


사진 끄트머리 잘록한 부분이 갈재 고갯마루가 되겠다.



고갯마루에서 몸을 왼짝으로 틀어 능선을 탄다. 앞에 보이는 것이 시루봉, 사진으로는 낮차막하게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가파른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에 더해 몇차례 암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담력을 요구하는 험로이다.  

바위를 오르는 것도 그렇지만 바위 하나를 오를때마다. 새롭게 터지는 시원한 조망이 눈을 사로잡아 이래저래 시간을 잡아먹는 구간이다. 

갈재 옛길은 사람의 발길이 끊겨 사라지고 있지만 그 밑으로 새로운 길들이 뻥뻥 뚫려 있다. 

사진 맨 윗쪽 산으로 오르는 포장도로가 장성으로 넘어가는 국도1호선, 맨 아랫쪽 새로 내고 있는 포장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어 뚫리는 새로운 국도1호선이다. 이 길이 완공되면 산을 굽이굽이 돌아오르던 국도1호선은 또 옛길이 되겠다. 

그 외에도 호남고속도로와 호남선 철길이 지나고 호남 고속철도 지나는 등 호남을 관통하는 큰길들이 갈재 옛길 부근에 집중되어 있다. 





시루봉을 목전에 두고 정읍쪽 능선과 장성쪽 능선을 번갈아 바라본다. 

양쪽 공히 가파르기 짝이 없는 험준한 지형이다. 

시루봉에 올라 입암산의 속창과 내장, 백암산이 아우러진 파노라마를 본다. 

여기에서도 역시 몸을 왼짝으로 틀어 사진 왼짝 끄트머리의 갓바위 방면으로 향한다. 

갓바위 방면으로 가던 걸음을 중간지점 쯤에서 입암산 안창으로 향하는 지능선으로 갈아타고 가다보면 계곡길 은선골에 다다르게 된다. 




은선골로 향하는 지능선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길이 희미하다. 

은선골로 내려가는 도중 조망 터지는 곳에서 백암산 봉우리들을 한눈에 잡았다.

상왕봉, 사자봉, 도집봉, 가인봉 등으로 판단된다. 

가인봉 너머에 청류암이 있다. 


은선골


은선골 삼거리의 단풍이 살아 있다.


은선골 삼거리에 도달해서야 길을 잘못 짚었음을 알았다. 은선골 삼거리 계곡 합수 지점에 입암산성 남문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참 빗나갔다. 

거의 10여년 만에 오다보니 한마디로 헷갈려부렀다. 

산성으로 들기 위해서는 1.2km가량 산을 거슬러올라야 한다.

아니면 시루봉에서 갓바위까지 거기서 다시 북문까지 쭉 능선을 타고 돌아서 내려왔어야 했다.  


입암산성 남문



산을 거슬러올라 입암산성 남문에 도달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모습이다. 

남문을 지나 성안마을과 관아가 있던 곳으로 향한다. 

산이 사라지고 평지와 다름없는 분지가 나타난다. 





옛날 집터 자리엔 사람이 살았던 자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커다란 나무가 신령스럽게 서 있고 확독이 단단히 박혀 있다. 

정유재란 당시 왜적을 맞아 산화했다는 윤진 순의비 자리에 서서 바라본 성안의 풍경이 쓸쓸하기 짝이 없다. 

황성옛터 노랫가락이 절로 나온다. 


11시 군령마을 - 11시 30분 갈재 - 1시 30분 시루봉 - 2시 30분 은선골 삼거리 - 2시 50분 입암산성 남문 - 주차장 - 4시 30분



군령마을을 출발하여 갈재 거쳐 산성마을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녹두장군 일행이 이 길로 오지는 않았겠다는 확신이 선다. 

발자취를 잘못 가늠한 것이다.구태여 많이 애돌아가는 더딘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일본군과 관군이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 하나 민보군이 활개치고 적의 척후가 집중되어 있을 갈재를 통해 산성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이 길이 아니다. 그것을 알아냈으니 헛고생한 것은 아니다. 길을 다시 더듬어야겠다. 


2014/11/27  녹두장군을 따라 입암산성에서 청류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