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농민전쟁의 숨결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전북도연맹 농업과학원 현장기행을 다녀왔다. 
다음날 비가 온다는 예보 탓에 인원이 반토막 나고 말았다.  
소설 녹두장군의 저자 송기숙 선생은 농민군과 관군 사이에 맺어진 '전주화약'의 수수께끼에 대해 모내기철을 코 앞에 둔 농민군들의 발싸심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술회하였다. 
몸은 전쟁터에 있으되 마음은 이미 고향의 논밭으로 달려가던 농민군들을 더 이상 전장에 붙들어둘 수 없었던 전봉준 장군 등 농민전쟁 지도부의 고심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하물며 전쟁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닌 역사기행인 바에야 제끼지 못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비도 오신다는데..

황토현 기념관 주차장에 모인 답사단은 전두환 5공 시절 세운 구 기념관부터 둘러보았다.  
해설과 길안내는 정읍의 갑오동학혁명 기념사업회에서 10여 년을 일해오신 분이 맡았다.

황토현 전적지 정화 기념비 앞에 섰다. '정화'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지만 그다지 귀에 설지 않은 단어. 
전두환이 즐겨 쓴 말이 아닌가?
황토현 전적지를 정화했단다. 
정작 정화되어야 할 당사자가 무엇을 정화했다는 것인가.

기념비 뒷면의 '전두환 대통령의 유시로..' 하는 부분은 얼마나 민초들의 공격을 받았는지 글씨판을 세 번이나 교체하고도 또 이 모양이 되어 있다고 한다. 
기념관 앞에 심어놓은 전두환 나무도 얼마나 잡아 흔들고, 발로 차고, 대고 오짐 싸고 했는지 죽어서 최근 다른 나무로 다시 심어놓았다고 한다. 

다음은 전봉준 장군 동상 앞이다. 
동상 앞에 선 해설사는 대뜸 이 조형물은 철거되고 다시 세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맨상투 바람의 전봉준 장군상과 소풍을 가듯 길을 가는 오동통 살이 오른 농민군들의 형상이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친일행적이 역력하여 친일인명사전에까지 이름자가 오른 사람이다.  
전두환 5공 시절 정권에 포진해있던 즐비한 장군님들 탓일까? 
동상의 제호 또한 '전봉준선생상'이다. 
선생이 뭐냐 선생이.. 이 니미헐놈들아.

 
지주아들로 유복하게 자란 작가가 형상한 오동통한 농민군들.
농민군들의 몸짓이 우아하다.
김경승(金景承, 일본식 이름: 金城景承, 1915년 ~ 1992년 2월 16일[1])은 한국의 조각가이다. 아호는 표천(瓢泉). 

경기도 개성의 지주 집안에서 출생했다. 서양화가 김인승이 친형이다. 
김인승과 김경승 형제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먼저 유학한 형을 따라 김경승도 1934년 도쿄 미술학교에 유학했다. 유화과에 다니는 김인승과는 달리 조각과에 입학하였는데, 이 학교의 조각과 학생으로는 최초의 조선인이었다. 

1937년 조선 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고 1943년에는 추천 작가가 되었다. 추천 작가로서 출품한 작품까지 선전에 총 다섯 점의 인물 조각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마지막 작품인 〈제4반〉(1944)이 애국반원인 조선 여성을 묘사하는 등 작품 전부가 일제의 구미에 맞는 시국성을 띄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2] 관변 조직으로 결성된 친일 미술인 단체 조선미술가협회에서 조각부 평의원을 맡기도 했다. 

이 같은 행적으로 인해 광복 후에는 비슷한 경우로 친일 혐의가 뚜렷하던 김은호 등과 더불어 조선 미술 건설본부 결성 때 제외되었다. 그의 형 김인승도 같은 이유로 조선 미술 건설본부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이순신, 안중근, 더글러스 맥아더 등과 현직 대통령인 이승만의 동상을 제작하면서 동상 제작 전문가로서 활동을 재개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로는 좀 더 정부와 유착한 행보를 보였다. 수유리의 사월 학생혁명기념탑을 건설하여 3·1 문화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동상을 제작했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복원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이화여자대학교와 홍익대학교 교수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조각계와 미술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제5공화국 때는 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을 지냈으며, 은관 문화훈장(1982)을 수상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 중 미술 분야에 선정되었다.
 
구 황토현전적지 기념관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농민군의 위패를 모셔놓은 '구민사'라는 사당이다.
이 사당에는 전봉준, 김개남 장군을 위시해서 총 51분의 농민군 위패가 모셔져 있고, 황토현 전투 승전 기념일인 5월 11일 위령제를 지낸다 한다.
계승사업회는 올해 추가로 50분의 위패를 모실 예정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