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12월 2일, 120년 전 전봉준 장군 일행이 피노리를 찾은 날이다. 

11월 27일 밤부터 시작된 전봉준 장군의 잠행은 이 곳 피노리에서 닷새만에 막을 내렸다. 

밤 사이 눈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피노리에는 전봉준 장군 피체 유적비를 비롯하여 전시관, 수련관 등이 조성되어 있다. 

농민혁명의 위대한 지도자가 다른 곳도 아닌 순창 땅에서 피체되었다는 사실이 순창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수치로 여겨지는 듯 이를 조금이라도 만회해보려는 노력의 흔적이 여기저기 배어 있다. 

잠군님을 밀고한 자가 순창이 아닌 정읍 사람임을 커다란 바위에 큼지막하게 새겨 넣었다. 

정읍 사람들이 발끈하고 나서 항의하기도 했으나 돌을 치우거나 문구를 수정해야 할만큼 거세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찌 됐건 전봉준 장군에 대한 속죄의식의 표현이라 하겠다. 




유적비 옆의 작은 전시실에 들어서니 자그마한 공간에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정보가 꽤나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어디서 보았던 것보다 선명한 전봉준 장군의 유일한 사진이 걸려 있다. 


사실은 재판을 받기 위해 이송(1895년 2월 말)되는 사진이라 한다.


김남주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보아다오,이 사람을 

거만하게 깎아 세운 

그의 콧날이며 상투머리는 

죽어도 풀지 못할 원한,원한 

압제의 하늘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죽어서도 감을 수 없는 

저 부라린 눈동자,눈동자에는 

90년이 지난 오늘에도 

불타는 도화선이 되어 

아직도 어둠을 되쏘아보며 

죽음에 항거하고 있지 않는가 

탄환처럼 틀어박힌 

저 커다란 혹부리는 

한 시대의 아픔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한 시대의 절망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음..



수련관 직원에게 실제 주막이 자리했던 장소를 물으니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가 옆 동네 어귀를 일러준다.  길 건너는 당시 하치등면 소재지로 장터가 있었다 하니 산골 속에서 꽤 번잡한 곳이었겠다. 

예전에는 주막자리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었는데 누군가 없애버려 지금은 사라졌다 한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 양옥집 자리가 되겠다. 

직진하면 정읍 산내로 빠지게 되니 피노리에서 별 일이 없었다면 전봉준 장군의 발길은 그 방향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양옥집 옥상 뒤로 보이는 산봉우리가 계룡산, 그 산자락에 마을이 들어앉아 있다. 

왜 하필 계룡산일까? 

일설에는 계룡산과 경천을 주의하라는 점괘가 전봉준 장군에게 있었다 하니 사실이건 후에 만들어진 이야기이건 참으로 안타깝고도 절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계룡산에 올라보았으나 사방으로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산줄기를 타고 계속 오르면 봄이면 절쭉꽃이 흐드러진다는 국사봉, 더 나아가다 보면 호남정맥 본줄기와 만나게 되겠다. 

다시 산을 되짚어내려와 다소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네 고샅에서 동네 아짐들과 마주쳤다. 


"오매 깜짝이야!"

어째 사람 보고 놀래고 그요?

"눈 오는디 어디서 오요?"

계룡산요.

"뭇 캐갖고 오요?"

오늘이 전봉준 장군 잽혀간 날이라 와봤어라.

"오매 어찌까.. 오늘이 그날이다요?"

...


잠시 그쳤던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한다. 

허물어져가는 빈집 투성이의 피노리 마을길을 터덜터덜 걸어내려오며 120년 전 그날의 녹두장군의 심정을 헤아려보려 애쓰지만 잘 안된다. 

눈발이 더욱 산란하게 흩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