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에 가면 올라가보고 싶은 산이 많다. 

때론 웅장하고, 때론 아지자기한 산들이 사방에 둘러쳐져 있다. 

산세도 산세려니와 그 이름들이.. 요샛말로 한이름한다. 

억불산, 천관산, 사자산, 부용산, 제암산..

하나같이 깊은 사연 한자락씩은 품고 있을 듯한, 그러면서도 위엄있는 이름들이다. 


어디로 가야 석대들판을 제대로 내려다볼 수 있을까? 

사자산을 오른다. 늘 마음에 품었던 일인데 막상 오르려니 출발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산자락을 파헤쳐 무슨 주택단지를 짓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로하스타운이란가 무이란가.. 참치 통조림이 연상된다. 

마주 보는 억불산에는 우드랜드, 이름들 참 격조 있다. 



시간을 다소 허비했지만 좌우튼 길을 찾아 산에 올랐다.

지금 내가 선 자리는 두봉, 사자머리에 해당한다. 

억불산이 내려다보인다. 뒤로는 천관산이 희미하고 왼짝으로는 바다, 오른짝으로는 탐진강 흐르는 읍내를 낀 석대들판이 펼쳐져 있다. 

석대들에서는 갑오년 동학농민군과 조일 연합토벌군 사이에 마지막 대규모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조일연합군이라 하나 조선조정은 농민군 토벌에 따른 작전권을 일본군에게 이양하여 조선의 모든 토벌 부대를 일본군(후비보병 19대대)에 배속시켰다.  

이민족 군대에게 군권을 이양하여 제나라 백성을 살륙토록 한 것이니 예나 지금이나 사대매국 통치모리배들의 행태는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장흥 농민군과 우금티 전투 이후 남하하여 집결한 농민군들은 장흥부를 점령하고 강진 병영성을 함락시키는 등 기세를 올렸으나 석대 전투에서 패하였다. 

이로써 갑오년의 대규모 농민전쟁이 비로소 막을 내린다. 갑오년이 저물어가던 섣달(12월) 중순의 일이다. 

석대들 전투에서 패한 농민군들은 자울재를 넘어 남해의 섬으로 스며들었으며 기어이 살아남아 항일독립투쟁을 이어간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무등산이 지켜보았듯 갑오년 농민군의 마지막 전투는 사자산과 억불산이 지켜보았다. 

산천초목도 분노에 치를 떨고 무주고혼이 된 넋들을 추모하여 머리를 풀어헤쳤을 것이다. 


석대들판이 정면에 바라다보인다.



몸을 뒤고 돌려 사자 등허리를 밟아 미봉(사자꼬리)로 향한다. 

사자산 등허리는 푹신하고 편안한 길이다. 

그런데 미봉이 두봉보다 높다. 

머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살짝 치켜세우고 있으니 이는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노리고 있는 긴장된 자세다. 

확 집어삼켜 제압하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으려니 얼마나 안타까웠겠나 싶다. 

미봉으로는 제암산에서 일림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이 흐른다. 

호남정맥의 기운이 흘러 두봉에 응축되었겠다. 이래저래 사자산은 기세가 좋은 명산이다.




제암산


일림산



미봉 방면에서 바라본 두봉.



성질 급한 진달래.



자울재 가는 길 탐진강변에서 바라본 억불산과 사자산. 

억불바위가 보인다. 

"저 바위가 억불바위네. '인민 억'자하고 '부처님 불'자를 써서 억불이네. 앞으로 돌아올 세상에 인민을 구제하는 억불 말이네"(한승원, <겨울잠, 봄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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