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영화'는 2006년 1월 한미FTA 저지투쟁의 포문을 열며 치룬 농민과 영화인들의 연대 집회였다. 
당시 농민과 영화인들은 한미FTA 저지 투쟁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집회의 정식 명칭은 ‘스크린쿼터 사수,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촛불문화제’였고..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농민투쟁 선포대회’를 마치고 참가한 농민들, 영화인들, 그리고 영화인들을 보러 온 청소년, 서울시민들이 꽤 많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룬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 이후 우리 농민들은 벼라별 투쟁을 다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엊그제 열린 여의도 농민대회 역시 '한미FTA 저지'가 주요 의제였다.

그날 이후 영화인들은 얼마간 더 우리 농민들과 함께 싸우다가 언젠가 모르게 투쟁을 멈추었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실제 우리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영화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동안 농민들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였노라고, 함께 싸우지 못해 죄송했노라며 우리들에게 큰 절을 올려 사죄하던 최민식이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잠시나마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싸웠던 기억이 사진을 추리다보니 그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공동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는 듯..

쌀포대와 필름을 교환하였다. 마이크를 잡은 당시 고창군농민회장. 어지간한 배우보다 멋져보인다.

홍콩투쟁의 영웅, 우리의 '횡성댁'

야는 누군지 모르겠다. 꽤 추운 날씨였는데..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던 정태춘.

왕의 남자.

우리 근영이 동상도 왔었네.

나는 김장훈을 이때 알았다. 폭발적인 공연에 꽤나 놀랐었다.

물좀주소 목마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