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장군, 영호대접주 김인배
전남 동부와 서부 경남 일대를 호령하던 청년 장군, 영호대접주 김인배. 섬진강을 배경으로 그의 모습을 목판에 새겼다. 총을 거머쥔 고뇌에 찬 모습에 그가 걸어온 숱한 고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정과 좌절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부가 사지에서 죽음을 얻는 것이 오직 떳떳한 일이요, 다만 뜻을 이루지 못함이 한이로다.
나는 공생공사를 맹세한 동지들과 최후를 같이 할 것이니 그대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공양하라.
영호대접주 김인배, 그이는 금구(현 전북 김제시 봉남면 화봉리) 사람이다.
갑오년 무렵 금구현은 혁명의 본거지였다. 1893년에 있은 원평(금구현) 집회는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을 ‘척왜양’을 기치로 한 사회변혁 운동으로 고조시킨 강력한 거점이 됐으며, 9월 2차 봉기 당시 원평은 농민군의 가장 든든한 후방 기지였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지도자들이 원평을 주 무대로 얼기설기 동지적 관계를 맺고 혁명의 큰 그림을 그려나갔으니 김덕명, 김개남, 전봉준, 최경선 등이 그들이다. 김인배 또한 이들과 더불어 성장했다.
김인배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전주화약 이후 농민군이 전라도 각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농민통치를 시행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전봉준은 최경선과 함께 태인으로, 손화중은 광주로, 김개남은 남원으로, 김인배는 남원을 거쳐 순천으로 내려가 영호도회소를 설치하고 활동을 개시했다.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이 함께 한 농민군 남원대회(음력 7월) 이후 전봉준이 영호도회소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김인배 영호대접주는 혁명의 큰 구상 속에서 각지에 근거지를 꾸린 핵심인물 중 하나였던 셈이다.
남원 농민군은 영남으로의 진출을 위해 운봉 고을을 공략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영남 유림과 관의 지원이 운봉 민보군 박봉양에게 집중됐다. 혁명은 백두대간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남해안의 사정은 달랐다. 영호대접주 김인배가 섬진강을 건너가 영남 지역을 공략했다.
그가 본격적인 군사활동을 개시한 것은 농민군 2차 봉기 즈음이다. 김인배가 이끄는 농민군이 섬진강을 건너 하동을 접수하자 진주, 사천 곤양 등 서부 경남 일대의 농민군들이 곳곳에서 봉기했다. 김인배는 하동 전투 승리의 여세를 몰아 영남 농민군과 함께 진주에 무혈입성했다. 명실상부 영호남 농민군의 연합과 호응에 따른 위대한 전과였다. 김인배와 영호도회소의 존재는 농민군의 든든한 후방이 됐다.
전봉준 휘하의 농민군 주력부대가 공주 우금티에서 대접전을 벌이는 동안 김인배는 섬진강 좌우 영호남을 넘나들며 관군과 민보군, 해안으로 상륙한 일본군에 맞서 처절하게 싸웠다.
그는 장기항전을 위해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 전라좌수영을 공략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군과 관군의 근대화된 무기와 치밀한 첩보전, 민보군의 살육전 앞에 역량이 소진돼 가는 와중에 광양에서 민보군의 포로가 됐다. 김인배 영호대접주는 100여 농민군과 함께 민보군에 의해 즉결 처형돼 객사에 효수됐다.
때는 바야흐로 갑오년 섣달, 그의 나이 25세였다. 장흥의 농민군이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고, 피체된 전봉준이 일본군에 인계돼 나주로 압송되고 있었다. 그의 최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포로가 되기 직전 처남에게 남겼다는 말만이 그의 집안 후손들에게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장부가 사지에서 죽음을 얻는 것이 오직 떳떳한 일이요, 다만 뜻을 이루지 못함이 한이로다. 나는 공생공사를 맹세한 동지들과 최후를 같이 할 것이니 그대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공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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