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마치고 산으로 간다. 
11년 전 갔던 길, 곤돌라 타고 설천봉, 향적봉 출발해서 삿갓골재 1박
남덕유, 장수덕유 지나 육십령까지..
그간 먹은 나이를 생각해서 최대한 짐을 줄인다.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산 아래서 뭉그적댄 시간이 너무 길었다. 
가다가 날 저물겄다

15시 30분
향적봉 오르는 길, 중첩된 산줄기 너머 나란히 솟은 남덕유와 장수덕유를 본다. 
겹겹이 쌓인 산줄기, 패인 골짝마다 쌓여 있을 역사의 무게를 생각한다. 

향적봉, 사람들이 많다. 
잠시 숨 돌리고 중봉으로..

저기 머얼리 구름을 인 반야봉 가슴에 담고,

죽어 천 년 살고 있는 고사목 지나,

15시 55분
중봉, 편안한 능선길 이어지는 덕유평전 굽어보며 숨을 돌린다. 
산길은 어제나 갈之자..
타박타박 그 길 위에 나의 걸음을 얹는다. 

백암봉 넘고 동엽령 지나 무룡산 타 넘어야 삿갓골재,
마치 삿갓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무룡산, 그 뒤에 삿갓 같은 봉우리 하나 더, 그것이 삿갓봉.
그 사이에 삿갓골재가 있다. 
필연코 저물겄다. 

걸어온 길 돌아본다. 
중봉 옆 적상산이 듬직하다.

백암봉에서 뻗어나가는 백두대간 저 멀리 삼봉산, 대덕산

남덕유가 아스라허다. 

망봉을 바라본다. 

1954년 1월 망봉에서 방준표 전북도당 위원장의 항미연대와 국군 5사단 36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방준표 도당위원장과 부대원들이 모두 전사했다.  
방준표 사령관은 경남 통영 출생으로 전쟁 시기 전북도당위원장과 전북유격대 사령관으로서 전북지역의 중요 산악지대를 거점으로 싸웠으며 당시 나이 48세였다. 
당시 망봉은 동쪽으로는 험준한 덕유 주릉과 연결되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절벽으로 길이 없고 오직 남쪽으로만 접근이 가능했다.
'무주로 통하는 기동로가 보이며 안성면 일대가 훤히 보이는 중턱의 절벽'에 사령부 아지트가 있었다 한다. 

이런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 주릉에서 망봉에 이르기 위해서는 거친 산길을 한 나절은 걸어야 한다. 

편안한 산길,

그 길에 가을이 내리고,

.

구절초가 발에 채인다. 

17시 10분
동엽령, 오늘 갈 길의 절반

가을 냄새 물씬
중봉 이후 인적 끊긴 산길
덕유산이 통으로 내 차지
가을바람 선들선들
억새 한들한들
나는 건들건들

8년 전 대간길을 걷던 나를 떠올려본다. 
그해 겨울 눈 쌓인 이 길을 따라 삼봉산 넘어 소사고개까지 단숨에 내달렸더랬다. 
10년 안에는 끝내야 할 텐데 수 년째 제자리, 소백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18시 5분
가림봉(칠이남쪽대기봉), 향적봉 남덕유를 잇는 덕유 주릉의 중앙

무룡산이 고개를 쳐들고 해 지는 남덕유를 바라보고 있다. 
장엄하리라던 저녁노을, 구름이 많아져 맹탕이 되고 말았다. 

서쪽으로 해 넘어가고 동쪽에 달 떴으나 구름 속으로..
무룡산 너머 삿갓봉, 삿갓봉 너머 남덕유, 장수덕유

멀리 지리산, 섬처럼 솟은 좌천왕 우반야

18시 23분
망봉으로 가는 가지 능선이 갈라지는 이름없는 봉우리.
정확히 오늘의 일몰시각,이제 곧 어두워질 터 잠시 쉬며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땡겨도 보고

무룡산

밀어도 보고

저 멀리 천왕봉

무룡산을 넘어야 한다. 

서산일락 해 넘어가 부렀다. 
쉬엄쉬엄..

어둠이 내렸다.
불을 켜고 속도를 늦춘다.
타박타박 다시 길을 이어간다. 
숲에 내리는 어둠이 좋다. 
노래가 나온다 흥얼흥얼

내 그대를 처음 만나던 밤
그 밤과 같이 별은 반짝이고~
...

북두칠성 반짝 빛을 뿌릴 때
그 별빛 아래 내 서 있으리라~

향기론 바람 불어가거든
내 그대를 그리는 줄로 알라~
...

그대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승리하고 돌아오라~

아쉽게도 별도,
향기론 바람도 없다. 

19시
무룡산, 대피소에서 전화가 왔다 
뭇 허고 여태 안 오냐고..
이제 내리막길 2.1km, 다 왔다 했다. 
대피소에서는 시간 반, 나는 40분 잡는다. 

마지막 빛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달을 찾는다. 

구름에 갇힌 추석달이 안쓰럽다. 

19시 40분
대피소 도착

라면 먹고 잠들다. 
대피소 2층이 온통 내 차지.
덥다, 침낭 괜히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