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서너 차례 깼다. 
너무 일찍 자서, 더워서, 방광 비우느라, 사람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대피소의 밤은 늘 이렇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06시 30분
비 내리는 삿갓봉,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이젠 대놓고 내린다.
다시 대피소로 피신, 꿈나라로.. 

비 그치길 기다리며 그야말로 꿀잠..
얼마나 잤을까? 대피소가 텅 비고 비가 그쳤다. 
사과 하나 촘 크랙카 한 봉지로 배를 채운다. 
산에서 나는 탈탈 굶고 다닌다. 

08시 20분
길을 나선다.

골짝마다 몽골몽골 구름이 일어난다.
구름천지, 구름바다..

적상산이 섬처럼 솟아 오르고,

구절초.
용담

비에 젖은 풀꽃들이 영롱한 빛을 발한다. 

08시 50분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환갑 지나면 지나치는 걸로..

아직은 이런 풍경을 보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다. 

갈 길도 가늠하고..

장수 방면, 차분히 가라앉아 있던 구름들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들판을 삼키고,

스멀스멀,

산을 넘본다. 

소리 없이,

태 안 나게 조용히,

삽시간에 산을 삼켜부렀다. 

쑥부쟁이
배초향

풀꽃들이 숨을 죽인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물러가고
하늘 열리고..

마가목

구름은 이제 하늘로 오를 채비를 한다. 
저 구름 다 오르고 나면 산 아래  굽어보는 재미 없겠다. 

느낌적인 산길 너머,

물에 흠뻑 젖은 노루궁뎅이, 
따 묵을까 하다 두고 간다.

하늘로 오르던 구름 떼 삿갓봉 부여안고 안간힘 쓴다.

구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남덕유가 지척

11시 15분
남덕유, 날이 쾌청해졌다. 
오늘 덕유산은 변화무쌍..

장수덕유(서봉) 건너다보고,

지나온 길 돌아보고,

토옥동 골짝을 굽어본다.
이현상 사령관이 주재한 6개 도당 위원장 회의가 열렸다는 송치골이 이 골짝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한 6개도당 위원장회의'는  남한 빨치산 투쟁의 통일적 지도체계를 확립한 중요한 회의였다.
이제껏 각 도당단위로 당사업과 유격대 사업을 병행해 실시하던 것을 분리해서
당사업은 여운철이 군사적 지도는 이현상이 맡는다는 것이 요지이다.
 
즉 각 도당별로 개별 분산적으로 유격투쟁을 수행하던 것을 이현상을 정점으로 하는 사단제 체계로 통일시켰는데
그 총거점은 지리산에 두게 된다. 그러나 회의에서 전남도당과 전북도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친다. 
 
각 도당 산하에 있던 유격대를 남부군이라는 단일의 순수 군사 조직체계에 편입하는 것은
당과 유격대를 분리시키는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됐고 또 소부대를 통한 기동투쟁이 유격전의 기본인데
대부대로 편성하는 것은 정규전이나 진지전을 펴겠다는 의도가 아니냐 하는 반론도 제기된다. "

[출처] '송치골 회의'|작성자 바람처럼
 

덕유산 토옥동 골짝

어디로 튈까를 고민하다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를 예약해 두었다. 올해 새로 심은 잔디밭 하나 시기를 놓쳐 풀 매느라 한 이틀 적잖이 고생했다. 논 둘러보고 스프링클러 옮겨주고 나니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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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유 상봉 가장 높은 돌팍 위에 무엄하게도 똥 싸놓은 녀석이 있다.  
향적봉 바라보며 똥 싼 듯..
족제비, 무엄하지만 멋진 놈이다.

춥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는다. 

장수덕유로 간다. 

가을 무르익는 산길 지나,

어느덧 남덕유를 바라본다. 

여기 오르면 천국인 것인가?
벅찬 포부 안고 오른다. 

12시 30분
장수덕유, 하늘이 가깝다. 
사람들도 행복해 보인다. 

저~기 아래 육십령, 종착지가 가늠된다. 
물 보충하려 장수덕유 아래 참샘을 찾았으나 실패, 다시 올라야 할 내리막길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이다. 
토옥동 방향 지능선 100여 미터 지점에서 샛길을 찾았어야 했으나 겨우 50여 미터 지점에서 뒤적거리다 뒤돌아섰던 것이다. 

13시 50분
상당히 내려온 듯한데 아직도 턱 밑, 
샘을 찾지 못한 탓에 라면 두 개 국물 거의 없이 졸여 먹었다.

할미봉 직전까지 편안한 능선길 이어지고

할미봉 부근 대포바위, 
산 아래 굽어보는 키다리 아저씨,
몇 번이나 눈을 씻고 봐도 긴가민가..

할미봉 아래 전위봉,
지나온 길 돌아보고..

15시 15분
할미봉을 오르며 할매를 본다. 
정작 오르고 보니 어디 가고 안 계시더라. 

마지막으로 돌아본다.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산이 화답한다.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다 왔다, 진짜로..

16시 20분
육십령,
마중 나온 녀석들..

21시 10분
집,
달님이 묻는다.
어디 갔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