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바닷가 심원면은 부안에서 해리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경계로 아래로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을 펼쳐놓고, 위로는 선운산 경수봉에서 개이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아래 골짜기를 파고든 깊숙한 산중 마을을 숨겨 놓았다. 
그 길을 지나다 산이 당기는 힘에 이끌려 핸들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작은 골짝 적당한 지점에 차를 세우고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은 있으나마나 딱히 길이랄 것도, 그렇다고 아니랄 수도 없는 그런 길이다. 
이런 길은 때론 쪼꼿하게, 때론 갈 지자로 우왕좌왕하며 걷는 맛이 좋다.  

변산바람꽃
족도리풀
노루귀

산에 접어들아마자 이미 꽃은 지고 없지만 풍성한 잎이 돋아난 변산바람꽃이 나를 반긴다. 
새로운 군락지를 추가한다. 규모가 꽤 크다. 
족두리풀, 노루귀가 지천이다. 
내년 봄 다시 만나세~ 인사를 남기고 할랑할랑 발길을 이어간다. 

희미한 흔적을 더듬기도 하고 내키는 대로 방향을 잡기도 하고 내가 내딛는 걸음이 길이 된다. 
문득 시야가 툭 터지고 너덜강이 나타난다. 
선운산 안팎 고라당을 통틀어 너덜강은 처음 만난다. 

너덜강을 만나면 산길이 즐거워진다. 
자칫 갈빗대 부러질세라 발부리에 주의를 기울여가며 오른다. 
저만치 색깔 진한 생강나무가 손짓한다. 

아따 때깔 진하다 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생강나무가 아니다. 
전문가와 협의한 결과 털조장나무로 결론을 내렸다. 
매우 귀한 나무라 하네. 이 나무를 보기 위해 무등산을 찾는다고..
어찌 여기 홀로 서 있는 것일까? 단 한 그루를 보았다. 

곰소만 바다 너머 변산반도가 보인다. 
너덜강 지나 본격적인 숲길로 접어든다. 

산에는 진달래, 전성기를 지나 지고 있더라. 
어느덧 능선에 이르렀다. 

인천강 너머 소요산
소요산, 소요산 너머 들판에 솟은 두승산

뾰족한 삼각봉으로 기세 좋게 솟은 소요산, 소요산 너머 고부 두승산, 내륙을 향해 깊숙이 파고든 곰소만.
고창 당촌 출신 녹두장군은 소요산 정기를 품고 태어났으며 고부에서 처음으로 장두가 되었다. 
고부봉기 이후 무장에서 재봉기한 농민군은 곰소만 깊숙이 자리한 줄포를 거쳐 고부로 짓쳐 들어갔다. 
곰소만 바닷길을 따라 제주도 농민군이 상륙하는가 하며 농민군 진압을 위해 출동한 중앙 경군이 들어왔다. 
산과 바다 들판이 어우러진 풍경이 갑오년 농민군의 함성으로 뒤덮이며 장엄한 서사가 된다. 
산에 새겨진 생채기가 안쓰럽다. 

능선 아래 굴이 있다. 
굴 끝에는 마치 창처럼 작은 구멍이 있다. 
저 구멍으로 빠져나가자고 몸을 밀어 넣는다면 자칫 찡겨 오도 가도 못할 만한 크기.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 뭔가 장치 없이 그냥 누워 잘 수는 없겠다. 

바위솔
경수봉

이짝에서 오르고 보니 경수봉이 능선 사거리가 된다. 
방향을 틀어 다시 심원 방향 다른 능선으로 갈아탄다. 

경수봉 지나 선운산 주릉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가면 저기 멀리 영광 방면으로 뻗어가는 영산기맥과 만나게 된다. 
이름하여 경수지맥이 되겠다. 

선운산 고라당 안팎이 조망된다.  

심원 방면

가시는 걸음걸음.. 봄날은 간다. 

보춘화
엄나무순 한 주먹
소사나무
연화리

비로소 알아보겠네, 그 이름 연화..
하~ 좋다! 늙발에 쩌그 가서 살고 싶다. 

선거통에 가 보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쩌 동네 토박이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얼마나 많은 땅이 이미 외지인 수중에 들어갔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변산반도
심원면, 들판과 바다

산행 막바지 길을 버리고 원점회귀를 위해 방향을 곧추 잡아간다. 
출구를 막아선 가시덤불에 갇혀 후퇴를 고민한다.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으니 헤쳐나갈 만한 길이 보인다. 

분분이 날리는 산벚 꽃잎을 맞으며, 산길에 흩뿌려진 진달래 밟으며 사뿐사뿐 할랑할랑..
새로운 길에서 만난 선운산의 또 다른 면모, 익숙하나 보지 못했던 풍경, 새로 발견한 변산바람꽃 군락지, 영광처럼 상처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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