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티 혈전 이후 전봉준 장군은 원평, 태인 전투를 마지막으로 1년여간의 농민전쟁을 마감하고 잠행에 들어간다.
입암산 아래 천원에서 하루를 묵은 장군 일행은 산을 넘어 입암산성에 들어 하루를 머무는데 12월 25일(양력)이 그날이다.

호남벌에 큰 눈이 내렸다.
그중에서도 정읍에 눈다운 눈이 내렸으니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었던 탓이다.

12월 24일, 나는 지금 산으로 간다.
내일 오후면 많은 눈이 녹아버리게 될 것이고, 눈길은 사람들의 발길에 어지러워질 것이기에..
나선 김에 장군님 길앞잡이도 해드리고..

정읍 쪽에서 바라보는 입암산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성채를 연상케 한다.
굳이 성벽을 쌓지 않아도 됨직한 가파른 산세지만 산성 북문 좌우로는 아직도 기나긴 성곽이 남아 있다.
정면의 갓바위가 오늘의 목적지 되겠다.

해는 이미 뉘엿뉘엿, 방장산 자락으로 넘어가고 있다.
출발이 많이 늦었다.

특보는 이미 해제되었으니..

17시, 산 입구에 서다.
산성 북문(능선)까지 1.5km, 4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거리지만 오늘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그야말로 눈 세상으로 들어선다.

노을이 지고..

대책 없이 눈은 깊어지는데..

별이 떴다.

이내 날이 어두워지고..
눈에 묻혀 사라진 길 위에서 어리둥절해질 때가 많아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짐승들의 발길을 따른다.
녀석들은 갑자기 숲 속에서 뛰어나와 얼마간 길을 따르다가 다시 숲으로 사라진다.
고라니 말고는 돌아다닌 녀석이 없는 듯..
한데 야동 전문가의 의견으로는 이 정도 산중이면 고라니보다는 노루라 보는 것이 옳다 한다.
하니 고라니가 아니라 노루라 수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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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 발자욱 따라 나도 큼직한 자욱을 남기며 한 발 한 발 산을 오른다.
눈을 뒤집어쓴 잡목이 길을 가로막기 일쑤여서 사라진 길을 헤쳐 가노라니 나도 눈사람이 된다.

종국에는 길이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하고 거친 사면을 치고 오른다.
저기 길 안내판이 보인다.
북문에 정확히 도착했다.

19시 13분, 북문 도착, 두 시간이 살짝 더 걸렸다.

가야 할 길, 800m
능선길이니 뭐 길 잃을 염려 없고 경사도 그리 심하지 않을 것이다.

바람이 몰아붙인 눈이 움퍽짐퍽, 때론 허리를 넘보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오니 의관을 정제한다.
방풍옷 꺼내 입고, 눈에 젖은 장갑 갈아 끼고, 모자 바꿔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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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까? 모둠발에 짧은 보폭, 몸이 가벼운 녀석인데..
내 실력으로는 알 수 없다.
전문가에게 보이니 족제비라고, 족제비는 항상 모둠발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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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암산 갓바위 638m

20시 10분, 흰 갓을 쓴 표지석, 다 왔다.
세상에나 한 시간이 걸렸네..

땀 식기 전에 서둘러 텐트를 친다.
대단한 바람독인데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고요했다.

아랫세상 한 번 구부다 보고..

잠자리 정돈하고 누룽지탕 끓여 소주잔 들기까지 다시 한 시간..

방석 핫팩 두 개
오리털 덧신

오늘밤을 따뜻하게 데워줄 신문물들, 지난 도청 농성이 남긴 투쟁의 유산이다.
심지어 저 핫팩은 하산 후 배낭을 풀어보니 그때까지 후끈한 열기를 발산하고 있더라.
새벽 세 시경 소변보느라 잠이 깨 한 동안 뒤척이다 다시 잠이 들었다.

8시 20분, 늦잠을 자부렀다.
해는 보지 못했더라도 붉은 아침노을이라도 봤을 터인데 좀 아쉽다.

시루봉 지나 급격히 낮아진 산줄기가 방장산으로 이어진다.
그 낮은 줄기에 예로부터 남도로 통하는 길이 있었으니 갈재(노령)다.
사람들이 걸어서 넘던 옛길, 자동차가 넘던 예전 국도가 한눈에 보인다.
그다음 길들은 죄다 산 아래 굴을 뚫고 지나간다.
국철, 신 국도, 고속도로, ktx가 다 이리 지난다.

방장산은 구름 속에..

입암산이 장성 사거리 방면으로 길게 뻗어간다.

멀리 구름을 인 병풍산과 불태산, 그 너머 무등산은 보이지 않았다.

정읍, 고창, 부안 방면 들판

두승산이 보이고..

멀리 영광 방면으로 뻗어가는 영산기맥.
축령산, 고산 등이 가늠된다.

11시 10분, 이 시간이 되드락 아무도 올라오는 사람이 없다.
아침 슬렁슬렁 차려먹고 짐을 꾸려 길을 나선다.

밤새 눈을 녹인 반 평이나 됨직한 체온을 남기고 간다.
언제면 다시 오려나..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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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눈꽃 세상이다.

거북이 대가리, 갓바위는 실상 거북이 등껍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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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다시 북문.
한 사람 지나간 자리, 내 발자욱 따라 수월하게 내려왔다.

여기부터는 다시 숫눈길, 능선을 벗어나니 푸근하기 이를 데 없다.
다시 의관 정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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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바로 그날이라고..
이따 저녁 느지막이 어둠을 타고 오실 거라네.

산성 안길을 걷는다.
펑퍼짐한 분지, 예전 농사를 지었던 논은 습지로 변했고 절이며, 산성 관아며, 마을이며 이제 다들 흔적으로만 남았다.
이곳이 나에게는 고난의 행군길이었으니 분지에 차분히 쏟아 부운 눈이 그 깊이도 깊이려니와 한껏 습기를 머금어 가는 걸음을 부여 잡았던 것이다.
몸이 땀에 젖지만 더 이상 벗을 옷도 없고 어쩔 수 없다.
이 표지판이 마치 십자가로 보였다는 것, 쉬지 않고 내려왔다.

힘에 겨운 노루도 똥을 한 움큼 싸놓고 넘어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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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도 족제비도 아닌 이 녀석은 누구인가?
몸이 가벼워 눈 위에도 족적을 남겼다.
전형적인 담비 발자국이라고..

이건 사람, 쪼꼿허니 걸어야 할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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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달 같다.

녹두장군 일행이 묵어갔을..
당시 산성별장 이춘선은 장군 일행을 맞아 하룻밤 유숙케 하고 이튿날 백양사에 머물던 일행에게 일본군이 따라붙었다는 전갈을 보내 서둘러 피신케 했다.
그는 이 일로 하여 이태 후 산성에 잠입한 일본군 흉탄에 피살되었다.

80년대 중반까지도 사람이 살았던 산성 마을..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
이미 어려운 고행길은 다 끝났지만 오늘만은 사람이 그리 반가울 수 없었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다.
"선생님 덕분에 편히 가겠습니다."
내려오다 보니 이 냥반도 두어 차례 길을 놓쳤더라.
고라니만 지나가도, 하다 못해 족제비 지나간 자리도 수월했는데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산성 남문에서 사람을 더 만나고 나니 이제 발에 엔진이라도 단 듯 내달리게 되더라.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산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 있으니..

산 입구 삼나무 숲길을 지나..

14시, 다 내려왔다.
이 차는 나를 한 시간 반 가량 기다렸다.
눈길을 벗어나 맨 땅을 밟는 기분이 낯설다.
중력을 매우 크게 받는 느낌, 지구보다 큰 행성에 온 듯한..
배낭을 내려놓으니 또 달나라에 온 듯 깃털 같은 느낌.
합법 시기 평지에 내려온 빨치산들 걸음이 그리 허둥거렸다던가..

"장군님 안녕하시라, 조선의 운명 위하여!"
장군님은 비록 얼마 못 가 피노리에서 붙들리고 이듬해 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어제오늘 나는 이런 마음으로 산길을 걸었다.
다른 농민군들이 투쟁을 멈추지 않고 불꽃같은 항쟁을 이어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