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선물 받았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얼떨떨, 세상에 이런 선물도 있구나 싶었다. 
농정신문에 연재했던 나의 글과 전봉준 장군의 마지막 걸음을 따라간 답사기, '피노리 가는 길'에서 악상을 떠올렸다 했다. 
나의 글과 답사기는 대부분 홍규 형님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고, 갑오년에 대한 나의 관심은 송기숙 선생의 '녹두장군'에서 시작됐으니 세상은 이렇게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돌아가는 모양이다. 

피노리 가는 길
박홍규, 피노리 가는 길, 2014, 45X105, 목판화

노래의 알갱이가 된 '피노리 가는 길'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아 전북도연맹이 기획한 박홍규 화백 판화전 대표작이다. 
전봉준 장군 일행의 잠행길은 불과 사나흘, 입암산에서 피노리에 이르는 길이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길을 더듬어 걸었고, 그 길에서 실제로 작품 속 풍경을 만났으며, 산을 넘는 고갯길과 물을 낀 산모퉁이에서 장군 일행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우금티 패전과 구미란, 태인에서의 마지막 전투 이후 시시각각 좁혀오는 적들의 추격과 포위망을 헤쳐 걸었던 마지막 걸음에서 하루가 빈다. 
아무런 기록도, 구전도 남아있지 않은 그 하루, 일행은 필시 산속 어디선가 한뎃잠을 잤을 것이다. 
엄동설한이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던 장군 일행의 심사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았다. 


"잊지 말어라 그날의 약속, 산을 넘고 물을 건너던, 우리 발걸음 다시 누군가 이어가리니.."

한데 노래를 듣고 또 듣다 보니 노래의 첫 구절에서 왈칵 눈물이 솟구쳤던 것이다. 
120년 전 그이들의 발걸음과 그 길을 따르는 누군가의 걸음, 그리고 그 누군가의 걸음을 다시 이어갈 또 다른 누군가.. 그들의 발걸음이 겹치고 또 겹쳤다.
그러니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바람과 염원.
그렇게 역사는 이어지고 흐르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노랫말과 곡조가 비로소 뜨겁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아직도 이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  
하지만 조만간 어느 산길에서, 혹은 동지들과 함께 걷는 길 위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산줄기 되고 물줄기 되어 을미 갑오세~"

갑오년의 일이 어찌 갑오년만의 일이겠는가?
노래는 말한다.
갑오년에 이르기까지, 갑오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고초와 민중들의 투쟁, 그 역사의 굽이치는 맥락을 잊지 말라 한다. 
나는 오늘도 이 노래를 듣고 부른다.
어느 한 구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나의 길을 걷는다. 
이 노래는 갑오년에 바치는 노래의 서막에 해당한다 했다.  
올 가을, 흑은 겨울 세상에 나올 가수 최상돈의 갑오년 농민군의 노래를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