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 6월 초 약 보름, 모든 힘을 모내기에 쏟았다.
이 시기 모든 일이 뒤로 밀렸다.
모내기 마치고 다른 일 터질 새라 지리산에 댕겨왔더랬다. 
그리고 한 달이 훌쩍 뜀 뛰 듯 지나가고 말았으니,
그날의 감흥은 이미 희미하지만 더 잊히기 전에 기록을 남긴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 거슬러 세석으로, 하룻저녁 자고 내려올 요량이다. 
첫나들이폭포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무슨 세줄일까? 
귀찮아, 나비에 대한 관심이 심각히 사그라들었다. 

귤빛부전나비

막바지까지 청초한 함박꽃, 북에서는 목란이라 부르더라. 

계곡이 쩌렁쩌렁, 목청 좋은 큰유리새

노랑할미새
.
새똥 위에 앉은 얼룩대장노린재

나비도 보고, 새도 보고 온갖 것들 들여다보며 할랑할랑 오르다 보니..
막판 고바위에서 다리에 쥐가 날똥말똥 힘겹게 올랐다. 
능선에 오른 순간 들려온 잣까마귀 소리에 천근만근이던 다리가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넘어가는 해를 보자고 촛대봉으로 간다. 
흰배지빠귀들이 길앞잡이마냥 어스름 등산로에서 통통거린다. 

해는 이미 서산에 몸을 숨기고

.
.

어두운 빛을 사방에 들이밀어 오더라

만경창파에 성난 파도 뱃머리를 진동해

둥실 떠가는 작은 배 나갈 길 막연해

새도 잠들고 바람 없는 촛대봉은 고요하기 짝이 없다.
여명 사라지고 빛을 발하는 달을 벗 삼아 촛대봉에서 내려온다.  

날이 바뀌고 다시 오른 촛대봉

노랑턱멧새가 이른 새벽을 노래한다. 

.

해는 천왕봉 옆구리에서 올라왔다. 

.

붉은 노을 한울에 퍼져~

핍박에 설움이 받쳐~

목이 터져라 노래하는 (섬)휘파람새들이 사방에서 툭툭..
잣까마귀를 기다렸으나 이따금 소리만 들린 뿐..

저짝으로 가야 한다. 
풀어야 할 숙제가 있으니..

남부능선 저 멀리 삼신봉

구상나무들일까?
빙하기를 건너온 구상나무들은 더워지는 지구 날씨에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천왕봉
참기생꽃
.

참기생꽃, 드디어 너를 만난다. 
단아하고 곱구나. 

대성골

저 멀리 반야, 
철쭉이 피고 지는 반야봉 기슭엔..

아스라이 무등산이..
사진기보다 눈이 낫다. 

두루미꽃

정말 두루미 같다. 

매사촌 울음소리 낭자했는데 다른 녀석이 튀어나왔다. 
흰배지빠귄가? 멀어서..

벙어리뻐꾸기, 벙어리 냉가슴 앓는 소리만 내는 게 아니더라. 

깜짝이야~

말쑥한 녀석

수풀알락팔랑나비

세석으로 돌아와 잣까마귀가 출몰한다는 습지 데크에 자리를 잡는다. 
따사로운 햇살에 바람 솔솔, 잠도 솔솔~
잣까마귀 소리는 이따금 저 멀리서 들릴 뿐 기척이 없다. 
잣까마귀 일찌감치 보고 천왕봉으로 넘어가자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시간은 어중간해지고..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가자 발길을 옮기는데 이따금 울리는 잣까미귀 소리가 가는 발길을 붙잡는다.
등산로 벗어나 바위에 올라 몸을 숨긴다. 
드디어 잣까마귀 한 마리 울음소리 드높이 가까이 접근한다. 
한테 나무 꼭대기 앉아야 할 녀석이 수림 속으로 사라지더니 한 동안 기척이 없다.  

드디어 몸을 드러냈다. 
아뿔싸~ 어치, 녀석한테 속았다. 
그토록 영락없이 나를 속이다니.. 과연 나는 진짜 잣까마귀 울음소리를 듣기는 한 것일까?
깊은 빡침이 밀려왔으나 나오는 건 헛웃음뿐이라. 
헛물만 켜고 간다. 

너의 이름은?
무슨 하늘소일까? 뒤져 볼 일이다. 

애기세줄나비

내려오는 길이야 뭐 그냥 하염없이 타박타박
계곡의 노랑할미새를 부러워하며 신발 한 번 벗어 말어 갈등하다 보니 어느새
사람 사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잣까마귀를 보지 못하고 내려왔으니 다시 오를 일이다. 
언젠가 다시 올 그날을 고대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