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는 사람이 있다.
진짜 농사란 무엇인가?
땅에 모든 것을 걸어 땅이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라야 진짜 농사꾼이요, 그런 사람이 짓는 농사라야 진짜 농사라 할 만하다.
더하여 땅에 쏟은 농사꾼의 정성, 땅의 결실이 온당한 처우를 받지 못할 때 더불어 함께 소리쳐 싸울 수 있는 아스팔트 농사꾼이라면 진짜 훌륭한 농사꾼이라 할 것이다.
갑오년 죽창 든 농민군이 있었다면, 이 시대에는 아스팔트 농사꾼이 있다.

직접 책을 만든 사람으로부터, 그것도 시인으로부터 책을 받기는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감격도 잠시, 어디론가 사라진 책을 석 달도 더 지난 오늘에야 트럭 의자 뒤, 먼지 구덩이에서 찾아내 밤을 도와 뒤적거렸다.
'오래된 책' 그것은 흙으로 만든 책이라 했다.
엄청 나이를 많이 잡수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걸어야 가 닿을 수 있는 책.
이 책은 번역본 말고 원본으로 읽어야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했다.
그것은 바로 5천 년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단절 없이 이어온 흙의 역사, 쌀의 역사, 농사꾼의 역사이다.

오래된 책에는 농사꾼의 풍자와 분노, 농민의 희망과 미래, 농촌의 현 세태와 그 속을 헤쳐가는 농사꾼의 고뇌..
오늘을 사는 농민들의 많은 것이 들어 있다.
그것도 생생하게 살아서 펄펄 뛰고 있다.

시인은 말한다.

"당신은 농부와 농민 중에서 어느 쪽이냐는 참 고약한 질문에..
 죽어라 일에만 복종하는 농부보다는 반골 기질 숨어있는 농민이 나는 썩 좋다
 그래서 그런지 농민은 생의 북쪽 같다
 ..
 농민회 방송차가 적막을 흔들어..
 낮잠 깬 옆집 노인이 마당에서 뭐라 궁청거린다
 게릴라처럼 적막 꽝꽝 흔들어놓고 사라지는
 방송차량 바라보며 노인은 삿대질했을 것이고
 나는 며칠 후 서울 가서 한판 붙을 생각을 했다
 ..
 농부와 농민 사이는 멀다, 그 사이가 아프다"라고.
(농부와 농민 사이에서)

나는 생각한다.
농부와 농민 사이의 그 차이가 메워질 때 오랜 역사의 질곡에서 농민은 해방될 것이다.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는 그날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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