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빠른 속도로 언덕배기를 내려오던 나는 나를 응시하던 한마리 새를 보았다. 
순간 머리 속에는 '청도요 아니면 멧도요'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차를 돌려 녀석에게 다가갔을 때 녀석은 납짝 엎드려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어떻게 이 녀석을 볼 수 있었을까?


청도요다.
이 자세로 딸싹도 하지 않던 녀석, 20여분이 지나서야 서서히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꼬리를 깝작거리거나 머리를 까딱거리는 여느 도요류와 달리 몸 전체를 위 아래로 흔드는 매우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경쾌한 몸놀림을 보여준다.

연사로 찍은 사진 30장을 묶었다.


25장


밤새 내린 꽤 많은 눈을 헤치고 다시 찾은 청도요. 어제보다 약 100여미터 아래에서 녀석을 발견하였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녀석의 등에 소복히 쌓였다.


이틀 후 다시 찾은 계곡, 이번에는 처음 만난 곳에서 약 30여미터 위 쪽에 녀석이 있다.


하늘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적정을 살피던 녀석, 나를 보더니 납짝 엎드린다. 


엎드린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는 녀석을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차 문을 여는 순간 계곡 저 아래로 날아가버린다.
단호한 녀석, 이것이 녀석과의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겨울이 다 가고 봄이 되도록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꽤 여러차례 찾았으나 행방이 묘연하다.
깊숙히 숨어버린 것인지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지난 겨울 보았던 새들 중에 가장 진한 여운을 남기고 간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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