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림저수지 앞동네에 산다. 

AI의 원흉으로 지목받았던 가창오리떼가 올해도 여지없이 도래했다. 

가창오리떼가 진정 AI의 원흉이라면 예방 차원에서라도 마땅히 이러저러한 방역조치가 취해져야 하겠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다. 

지난해 가창오리떼가 떠난 후에도 AI는 1년 내 지속적으로 별병했고 당국은 아직 떠나지 않았거나 텃새화되어버린 청둥오리들을 지목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 말을 곧이듣는 사람은 없다. 

언론이나 당국도 더 이상 AI 가지고 부산을 떨지 않는다. AI 발병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려오지만 대규모 살처분 소식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왜일까? 짐작컨대 가금육 시장상황이 대규모 설처분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가금육 시장의 맹주 하림과 농식품부 등 관계 당국간의 공공연한 밀월관계 속에서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AI는 조용히 봉합될 수도 있고 눈덩이처럼 키워져 대한민국을 법집 쑤셔놓은 것처럼 소란스럽게 할 수도 있는 것으로, 지금껏 그리해온 것으로 추정한다.   

 

각설하고.. 올 겨울 잦은 폭설로 동림저수지에 머무는 가창오리떼 규모가 들쑥날쑥한다.  

들판에 눈이 쌓이면 사라졌다 녹으면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음이다. 

올 겨울 들어 아직 대규모 가창오리떼가 도래하지는 않았다. 

경험에 따르면 2월이 되어야 큰 규모의 가창오리떼가 도래할 것이다.  

해질 무렵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가창오리떼를 보러 저수지 가상에 나갔다. 

그리 많지 않은 가창오리들이 먹이터로의 이동을 앞두고 대열정비중이다. 

가창오리떼가 펼치는 화려하고 밀도 높은 군무의 지휘체계나 신호체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가창오리들의 군무와 군무 전후 행동들을 보면 무언가 지휘, 신호체계가 분명히 있을 것임을 감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시에 비상하고 일시에 비행을 마치는 일사분란함을 어찌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핵폭발 후 버섯구름이 일듯 수십만마리의 가창오리떼가 굉음과 함께 일시에 부상하는 장면을 보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저수지 가상에 내려오니 해가 막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다. 

수면 위에 폭넓게 산개해있던 가창오리들이 몇차례 대열정비를 마치고 저 멀리 저수지 복판에 밀도 높게 집결해 있다.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녀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저수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해가 지고도 한참 후에야 녀석들은 본격적인 이동에 나섰다. 

뚝 너머 저수지 아래 들판으로 향한다. 

들판에 가창오리들의 먹이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올해부터 볏짚을 묶어내지 않는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창오리 직불금이다. 나는 밀을 갈아볼 요량으로 신청하지 않았는데 날이 궂어 갈지 못했다. 

밀도 못갈고 보조금도 못받고 .. 좌우튼 나는 돈되는 일하고는 사대가 안맞는다. 

 

 

가창오리떼가 머리 위를 지나가자 바람이 살랑 일어난다. 

규모가 크면 바람도 거세게 일고 녀석들이 떨어뜨린 물방울이 소나기처럼 후두둑 쏟아지며 몸에서는 전율이 인다. 

 

 

날개가 스칠 듯한 근접비생을 하면서도 추돌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비결이 무엇일지 몹시 궁금하다. 

아래는 어제 담은 가창오리 군무 동영상이다.

사진기 조작을 잘 하지 못해 촛점이 순간적으로 오락가락하고 흔들려 보기가 좀 사납다. 

 바쁘신 분은 마지막 동영상만 보시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