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피를 뿌려주는 것이 옳거늘 어찌 컴컴한 적굴 속에서 암연히 죽이느냐"


소설은 처형 직전 전봉준 장군이 남긴 마지막 말씀을 종자 삼아 죽음으로 가는 전봉준 장군의 처절한 노정을 그리고 있다.    

농민군을 해산하고 잠행에 들어간 전봉준 장군 일행이 피노리를 향하는 장면, 전봉준 장군은 잠행을 마칠 방도를 구상하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곧이어 김경천의 밀고와 피체, 서울로의 압송.. 압송길에서 겪는 인간 전봉준의 고초와 고뇌. 

피체 과정에서 상한 다리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이로 인해 겪는 인간적 치욕, 사람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을 내적 갈등에 대한 사실적 서술이 두드러진다. 

대처나 그랬겠구나.. 실상은 더 했을수도 있겠지 하다가도 때론 불편해질 정도다. 


하지만 정작 큰 불편함은 작가의 느슨한 역사인식, 사실관계에 대한 왜곡 등에서 기인한다. 

농민항쟁의 역사적 제한성을 무시하거나 미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갑오년 농민군들의 반봉건반외세 투쟁에 대한 전면적 통찰 없이 농민봉기를 치기어린 모험으로 치부하는 대목이나 섣부른 봉기로 화를 자초했다는 투의 자탄에 이르러서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소설 속 전봉준 장군이 자책한다. 

"일본군이 끼어들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큰 실책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독백이다.  

2차봉기 이전부터 전국 각처의 농민들은 이미 자발적인 항일투쟁에 나서고 있었고, 2차봉기는 일본의 침략행위에 맞선 전면전 선포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 봉기의 지도자가 일본군이 끼어들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탄하다니.. 이 무슨.. 전봉준 장군을 너무나 바보스럽고 우매한 지도자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작가는 2차 농민봉기를 <일본군의 참전을 예상치 못하고 일본군 무력을 경시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거사>로 몰고 가 전봉준 장군과 농민군 전체를 모독하기에 이른다. 

일본의 근대식 무기에 맞선 농민군의 화승총과 죽창은 그럴줄 몰랐던 우매함과 경솔함의 발로가 아니라 조선 천지에 농민군 말고는 일본의 침략행위를 단죄할 그 어떤 세력도 없었던 조건에서 단행한 목숨을 내던진 피의 항전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전봉준 장군과 대원군과의 관계를 과도하게 설정하여 전주화약과 2차봉기를 대원군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농민군 한양진격의 목표가 마치 대원군 옹립에 있었던 것처럼 묘사한 대목 또한 철저한 고증에 기초하지 않은 작가의 과도한 주견에 해당한다 하겠다.


전봉준 장군은 3월 29일 형을 선고받고 이튿날 꼭두새벽(양력 4월 24일)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장군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소설은 <정강이를 넘는 눈이 쌓이고 하늘에서는 목화송이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고 그리고 있다. 

그리고 망나니의 칼에 목이 베이는 것으로..

사실과 많이 다르다. 그 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으며 참형이 아닌 교수형으로 집행되었다. 

그래.. 소설이니까..


겨울잠 봄꿈

저자
한승원 지음
출판사
비채. | 2013-04-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백성을 위해 일어났으나 백성에 의해 죽어간 외롭고 작은 영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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