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나라 없는 나라'.. 제목 치고는 참 거시기하다. 

제목이 왜 이럴까? 소설의 배경이 되는 120여년 전, 소용돌이치던 조선 말기의 우리 역사와 관련이 있다. 

 

조선 말기 부패한 조정과 탐관오리들의 가혹한 수탈과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던 외세의 침탈에 맞선 농민들의 저항은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으로 폭발한다. 

혁명 초기 파죽지세로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의 위세에 놀란 봉건 통치배들은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에 이르는데..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자기나라 백성을 압살하려 한 정신 나간 사대매국 행위는 조선을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몰아간다.  

 

청나라의 파병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일본에게 조선 진출의 빌미를 제공하고,

일본은 이때다 하고 청나라보다도 앞서 제물포에 군대를 상륙시켜 그 길로 한양으로 직행하여 용산에 주둔한다. 

때를 잡은 일본은 급기야 경복궁을 점령하여 고종을 볼모로 잡고 꼭둑각시 개화파 내각을 세운다. 

조선반도는 청나라와 잍본군대의 전쟁터가 되고 일본이 승리한다. 

바야흐로 일본의 조선 점령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한편 청일 양군의 조선 파병으로 하여 조정과 화약을 맺고 사태의 추이를 날카롭게 지켜보던 농민군이 재차 봉기(9월봉기)한다. 

농민군은 보다 선명하게 '척양척왜'의 기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논산에서 남북접 연합군이 합류하여 한양으로의 진군길에 오른다. 

동학농민혁명은 호남을 넘어 전국적인 봉기로 확대되었다. 

 

친일파가 득세한 봉건 통치배들은 이번에는 일본군대에 의탁하여 농민군을 토벌할 계획을 세운다. 

조선군대에 대한 지휘권까지 양도받은 일본군은 우금티 전투에서 농민군에게 궤멸적 타격을 주고 거침없는 토벌전(이른바 '청야작전')을 감행하여 농민군을 소멸시킨다. 

이는 군국주의화한 일본이 해외에서 자행한 최초의 집단학살이었으며, 이로써 일본은 당대 조선의 민족자주 역량을 말살하고 식민지배의 발판을 구축하게 되었다.  

유일한 민족자주 역량이었던 농민군이 소멸됨으로서 조선은 급격한 망국의 길로 접어들어 불과 20년을 버티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소설 '나라없는 나라'는 우리 민족사의 커다란 전환기였던 이 시기를 결전에 나선 농민군과 그 지도자 전봉준 장군의 눈과 입을 빌려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소설 속 이야기는 고부봉기를 도모하는 장면으로부터 전봉준 장군 압송, 그리고 그 뒷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민족사의 큰 굽이를 온몸으로 맞받아내야 했던 농민군과 그 지도자, 이름없는 백성들, 양심적 선비와 정치가들을 얼기설기 촘촘하게 엮어내며 거침없이 전개된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실로 실감나면서도 명료하게 묘사하는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이다. 

이로 하여 책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나라는 없다!

궁을 나가자! 지킬 임금도 없다!

 

경복궁을 침범한 왜군에 맞서 궁을 사수하던 조선 군대에 총을 내려놓으라는 어명이 전해진다. 

분노한 군인들은 총을 부수고 군복을 찢어버리고 궁을 떠난다. 

스스로를 무장해제하고 일제의 주구가 되기를 자청하다니 이것이 무슨 나라인가?

나라 없는 나라,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너무도 강렬한 대목이다. 

 

이로써 농민군만이 침략 야욕을 노골화한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지킬 유일한 무장 세력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부패 무능한 봉건 통치배들은 일본군대와 협잡하여 농민군을 격멸한다는 망국적 결정으로 마지막 남은 나라의 진기를 스스로 짓밟아버린다. 

이처럼 제 나라 백성을 적대시하여 외국 군대를 끌어들이는데 망설임이 없고 큰 나라를 섬기는데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고 마는 사대매국노들의 행태는 오늘도 변함없이 시대를 거슬러 전승되고 있다. 

 

당시 권좌에 앉아 있던 봉건 통치배들은 오늘날 사대매국 집단의 뿌리가 된다. 

농민군 전주점령에 즈음하여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는 간곡한 서신을 띄웠던 민영준의 변신 과정을 보자.

민씨 척족의 실력자였던 이 자는 훗날 민영휘라 개명하고 친일파로 변신하여 막대한 돈(소위 '은사금')과 작위를 수여받는다. 

백성의 등골을 우려내고 나라를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 자는 당대 최고의 조선 갑부가 되는 한편, 재산 일부를 떼어 '휘문' 학교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마치 무슨 민족사학을 설립해 민족인재를 길러낸 것으로 포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영휘의 자손과 일족들은 거대한 부를 세습, 유지한 채  미국 등지에서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세간에 남이섬의 실소유주가 누구냐 하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민영휘의 손자 민영도, 증손자 민응기는 남이섬을 매입, 운영한 이른바 실세들이다.
남이섬을 매입한 민영도의 자금과 민영휘 재산의 상속관계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그 연관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날 친일파의 물적 토대는 강고하게 우리 사회에 뿌리박고 유지, 증식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갑오년에 쏜 총알이 지금도 날아다니고 있다. 그 시절은 오늘의 첫번째 단추가 틀림없다"

 

1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무엇이 다른가 하는 말들을 요즘 들어 부쩍 많이 하게 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정세가 그렇고, 박근혜 정권이 벌이는 사대매국 행위가 그렇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첫 단추가 꿰어졌던 120년여년 전 그 시절, 치열하게 살고 죽어간 농민혁명군의 영웅적 투쟁을 오늘에 계승하기 위해서도, 되풀이되는 오욕의 역사를 말끔히 청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역사가 주는 진실과 교훈을 똑똑히 보고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미래와 민족의 운명 문제에 관심이 있고, 그로 인해 심화가 끓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금도 날아다니고 있다는 갑오년에 발사된 그 총알이 장차 누구의 심장을 관통할 것인가?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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