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계남 친구와 밤이 이슥하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결국은 농민회 얘기, 당 얘기..
머리는 나보다 더 벗겨졌지만 마음만은 열혈 청년이다. 
집으로 같이 가자는 걸 뿌리치고 내일 한번 더 태우러 와달라는 부탁을 하고 모텔에 짐을 부렸다. 

수분재로부터 600여미터 지점 어제 물러선 그 자리, 내 이런 곳에서 헤맸더랬다.
새벽녘 내린 비로 산천초목이 촉촉히 젖었다. 
내 바짓가랭이도 젖어든다.
어릴 적 배운 간첩식별 요령에 따르면 바짓가랭이가 이슬에 젖어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의심하라 했는데..
꼭 내가 그 몰골이겠다. 

"요 있네", 옷을 찾았다.
예상했던 곳, 불과 10여미터 안짝에서 길이 엇갈려 헤매였도다.
당연한 일이지만 주머니 속 물건은 그대로 잘 있다.

어제 옷을 찾아 다시 산을 올랐다면 어찌 됐을까?
정상에 이르는 내내 길이 이렇다.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거친 산길, 낮에도 길이 헛갈린다.

신무산 정상 근처, 수분재에서 오르는 길을 만난다.
수분 마을 입구에서 오르는 산길인 듯.. 잘 정비된 고속도로와 다름 없다. 
나는 이정표상 거리의 두배 남짓 되는 거친 산길을 에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정맥길이 둘일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어떤 길이 옳은 길인가?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수분마을 입구 논두렁길을 살펴보니 모두 금강권역으로 물이 흘러든다. 
이정표상의 길을 따르게 되면 금강으로 흘러드는 계곡 하나를 뛰어 건너는 셈이 된다. 
그러니 제대로 능선길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수분 휴게소 앞 수분령 돌 표지석 앞에서 길을 건너 상교길 초입에서 산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정상은 구름에 휩싸여 있다. 아무것도 안보인다.
기다려볼까 하다 서둘러 길을 나선다.
새벽녘 비로 출발은 늦었는데 갈 길이 멀다.

자고개를 넘는다. 이 고갯길은 차고개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산서 친구는 둘 다 못알아듣고 나중에서 "아~ 작고개" 하더라. 
거 참.. 고개마다 이름도 많다.  

이제 팔공산을 오른다. 
몇해 전 겨울 반대방향으로 이 산을 오르내린 바 있다.
지나온 신무산을 바라본다.
시커먼 산덩어리, 저짝 끝에서 이짝으로 산발을 타 넘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어젯밤 되돌아가길 잘 했다 싶다. 

합미성, 후백제(892~936) 때 건립했다 하니 천년 세월을 버텨온 유적지다. 
군량미를 보관했다 한다. 
성 내부에서 진행하던 발굴 작업은 진전이 없는 듯 몇해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무너진 성벽 사이마다 고목이 자라고 있다. 
그래도 옛 성터보다 나이먹은 천년 묵은 아름등걸은 보이지 않더라. 

당단풍은 노랗게도 물들고 빨갛게도 물들고..

투구꽃

수리취

중계소 탑이 서 있는 팔공산 정상의 조망은 탁월하다. 
활주로처럼 길게 뻗은 산서 들판, 저짝은 임실에 속해도 될 법 한데 정맥 너머 산서라는 이름으로 장수에 속해 있다. 
폐허로 남아 있던 정상부의 군 막사도 얼추 철거되어 조망을 방해하지 않는다.
다만 헬기장이 있는 동봉과 더불어 동서 조망을 나누어 제공할 따름이다. 

팔공산에서 만행지맥과 성수지맥이 갈라져 나간다.
낮게 웅크리고 기어가는 낮은 산줄기가 남원 보절면에 이르러 만행산으로 크게 일어나는 만행(천황)지맥. 
사진 외약짝 맨 뒷편 산줄기 가운데 뽀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만행산 천황봉.

이짝은 동봉, 장안산으로부터 비롯된 정맥 줄기가 한눈에 잡힌다. 
그 너머 대간 줄기는 구름이 많아 잘 보이지 않는 듯..

빛이 내린다.

서구이재를 향해 능선길을 걷는다. 
날이 갈수록 깨어나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검은구름은 흰구름이 되었다. 
앞으로 이어갈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위용을 과시하듯 연달아 서 있다. 
선각산, 덕태산, 천상데미..

서구이재로 오르는 도로, 저 멀리 장수덕유와 남덕유가 마주보고 있다.
서구이재는 장수읍과 진안 백운을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산행 끝, 서구이재로 내려선다. 

밤 까먹는 재미

장수에서 점심을 먹고 차 세워둔 곳으로 돌아왔다. 
날은 완전히 깨어났다. 
여기는 번암면 상교리 옛이름 웃다리골, 지리산 주릉이 눈앞에 척 펼쳐진 고랭지 텃밭 참 좋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가을 타기는 이제 그만..

금남호남정맥 수분재-서구이재.gpx

금남호남정맥 밀목재-수분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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