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지난 2월 호남정맥을 타보겠다고 첫발을 떼어놓았다. 
눈이 수북했더랬는데 지금은 가을이다. 봄, 여름은 어느결에 지나가부렀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무령고개까지 차를 올려놓고 시작한다.
무령고개인지, 무룡고개인지, 둘 다 맞는지.. 지어 무령공재라는 이름까지 있다. 
다음 지도에서는 둘 다 검색된다. 발음하기 쉬운 무령고개라고 해두자. 
영취산은 다녀왔으니 오늘은 장안산으로 바로 직행하면 된다. 

장안산은 백두대간에서 가지쳐나온 산줄기 금남호남정맥의 첫번째 산이다. 
금강 남쪽과 섬진강 서쪽의 모든 산줄기는 장안산으로부터 비롯되고 또한 장안산으로 수렴된다. 
가히 호남의 종산이라 할만하다. 
무령고개에서 밀목재까기 산길 30리, 오늘 그 길을 간다. 
대략 다섯시간을 잡는다. 

단체 산행객들로 번잡스런 무령고개 주차장을 벗어나 가을색 짙어가는 산길로 접어든다. 
오늘의 동행자, 앞서가는 수정이 뒷모습이 순식간에 가을로 물든다.  
오늘 걷게 되는 산길은 거의 대부분 이런 길의 연속이다. 

그리 길게 오르지 않아 갑자기 시야가 툭 터지고 능선 남쪽 사면으로 꽤 큼직한 억새밭이 나타난다. 
왼쪽으로는 대간에 속한 백운산이 듬직하다.
정면으로 지리산 주릉이 한눈에 잡혀야 하는데 날이 흐릿해 보이지 않아 아쉽다.
골이 깊다.  


머지 않은 곳에서 장안산 상봉이 어여 오라 손짓한다.


억새밭 속의 가을꽃, 용담

억새꽃 너머 백운산 지나 북진하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우람하다. 

지나온 길, 그 너머 영취산.
육십령 방면 산줄기가 흐릿하게 사라진다. 

장안산 정상, 정상에서의 조망은 밋밋하고 다소 답답하다. 
등산객들조차 북적이니 정신이 없다. 
서둘러 정맥길을 잡아 길을 나선다. 

상봉을 지나 정맥길로 접어들면 한동안 내리막이 이어지는데 그 많던 등산객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산은 그야말로 무인지경이 되었다. 
계단이 설치된 급경사지에서 잠깐 터지는 조망, 맨 앞쪽에 전개된 능선이 오늘 가게 될 산길의 끄트머리가 아닌가 싶다. .

줄곧 이런 편안한 산길이 이어진다.
밀목재까지 가는 동안 두세개 정도 산봉우리를 지나게 되지만 조망은 전혀 터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봉우리들은 변변한 이름조차 달고 있지 못하다. 
능선길을 걷는 동안 오래된 참호의 흔적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그 옛날 유격전이 전개되던 당시 토벌대가 주둔했던 흔적이리라. 


숲이 짙으니 꽃이 귀하다. 
숲그늘 아래 꽃대를 올린 구절초는 살람거리는 바람에도 연약하게 흔들린다. 

흔하게 보는 버섯인데 막상 이름을 찾자니 어렵다. 
아주 어릴 적 오랜된 기억 하나 되살아난다. 
보건소가 따로 있지는 않았겠고 면사무소쯤 되지 않았겠나 싶다. 
어깨에 맞는 불주사를 맞으러 갔는데 목놓아 우는 아이들로 온통 난리통이었다.
왜 그다지도 우는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꿋꿋하고 씩씩하게 주사를 맞았다.  
아버지께서 꽤 기분이 좋으셨던지 점방 유리 진열함 안에 들어 있는 빵을 고르라 하셨다. 
이 버섯이 그때 그 빵모양과 색깔을 영판 빼다 박았다. 
설탕물을 발랐는지 좀더 윤기가 반지르르했었던 그때 그 달콤하고 부드럽던 빵맛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몇살때 일인지.. 

밀목재가 가까워진 지점 벌목지대에서 겨우 약간의 조망권을 획득하였다. 
다음번 혹은 그 다음번에 타게 될 팔공산에서 선각산, 성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눈 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지나온 길을 더듬어볼 기회는 부여하지 않았다. 
장안산은 끝내 자신의 전모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산 처음이다. 

밀목재 820미터, 고생했다 내 다리..

밀목재 남쪽, 방화동 계곡이 발원하는 최상류가 되겠다. 
밀목재에는 원덕산 마을에서 이주해온 수몰민들이 사는 신덕산 마을이 있다. 


"우리가 저기서 내려왔나요?"
내가 보기에 엉뚱한 곳을 가르키고 있다. ㅎㅎ

무령고개 들머리가 계단이더니 밀목재 날머리도 계단이다. 
꺼먹돼야지 잡다 달려온 중석이 차를 얻어타고 다시 무령고개로 돌아간다. 
걸어온 산길 12키로, 돌아가는 찻길 26키로..
장안산의 넓은 품을 미루어 짐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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