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던 故 김용균 님

 

 

꽃다운 나이, 젊으나 젊은 청년 노동자.

너무나 이른 나이에, 너무도 참혹하게 떠나버린 우리들의 아들, 우리들의 아우..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나? 

누가 그를 이처럼 황망하게 이승을 뜨게 했단 말인가? 

붙잡을 손도, 부를 이름도 없이 창졸간에 닥쳐왔을 그의 참혹한 죽음 앞에 우리는 떳떳한가?

 

94년생 고 김용균은 우리 집 큰 놈과 동갑내기. 

97년생 세월호 아이들은 우리 집 둘째와 동갑이더니.. 

아.. 이건 남의 일이 아니다. 

겨울방학 동안 건설현장에서 일하겠다는 아들놈 전화에 그 일 위험하진 않냐 차마 묻지 못했다. 

나는 노동현장을 모른다. 

비정규직의 삶이 얼마나 처참한지, 불법파견이 뭔지..

하청과 외주화가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사람대접 못 받고 있다는 것, 

이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사람대접 못 받기는 노동자나 농민이나 다를 게 무엇이더냐. 

가난이 대물림되듯 위험이 대물림되고 사회적 천시가 대물림된다. 

쌀값 좀 올려달라는 절규에도 농민이라는 이름을 입에 걸치는 것조차 꺼려하는 대통령, 

자신을 찾아온 농민들을 사팔 곁눈질로도 쳐다보지 않고 자리를 뜨던 이해찬, 

그들이 왜 그랬겠는가? 

그들이 미국과 재벌 앞에서도 그리 도도하고 고고한가?

사람으로 안보는 거다.  

그들의 안중에 우리가 없는 거다. 

 

우리 농민들이 농산물값 폭락으로 신음할 때 

우리 아들, 딸들은 저임금, 불법해고에 살림살이가 거덜 난다. 

뒤집힌 트랙터, 농기계에 깔린 아버지의 머리, 그 몸뚱이가 발버둥 칠 때 

우리 아들, 딸들의 머리도, 몸뚱이도 안녕하지 못했다. 

“함께 살자”는 요구에 돌아오는 것은 차디찬 외면과 무시, 불법해고와 처참한 죽음뿐이다. 

아.. 이게 어찌 사람 사는 세상이란 말인가.

 

고 김용균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요구했다. 

그것은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차별을 없애겠다는 약속, 

안전 문제로 눈물짓는 사람 없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절규였다. 

우리 사회 곳곳, 외진 곳, 그늘진 곳에서 우리는 오늘도 외친다. 

사람대접 못 받는 모든 사람들이 외친다. 

“문재인 대통령, 여기 사람이 있소” 

 

꽃나이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의 죽음을 앞에 두고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우리들의 아들, 딸, 우리들의 형과 아우를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 만들어야지 않겠느냐고. 

손에 잡히는 일 그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우리에게는 무기가 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박근혜 정권과 그 일당을 단죄한 촛불, 

세상을 바꾸는 촛불이 있지 않은가. 

다시 촛불을 들자. 

 

고창의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무엇이라도 하자,

분향소를 설치하고 촛불을 들자 의논했다.

12월 27일, 고창군청 앞 5거리에서 첫 번째 촛불을 든다.  

함께 외치자. 내가 김용균, 우리 모두가 김용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