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농성장의 밤이 깊어간다. 

노회한 군의원의 정치적 야심과 술수에 농락당한 농민수당, 일시적 곡절에 불과하지만 치욕스럽다. 

농민의 이름으로 되갚아주마.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막급하게 만들어주겠노라 다짐한다. 

간만에 맞는 고요한 밤, 엊그제 다녀온 백두대간을 되돌아본다. 




대간 가는 길, 북접 농민군 최후 항전지 북실전투 현장에 조성된 동학 농민혁명 기념공원을 지난다. 

렌즈가 없다. 차 속을 발칵 뒤집어도 없다. 사진기만 가져오고 렌즈를 놓고 왔다. 

렌즈 찾는다고 정신이 사나워져 술 한잔 올리지 못앴다. 



옥천, 보은을 경유하여 오후 네시경 비재를 출발, 지나온 봉황산을 돌아본다. 

나는 오늘 피앗재 산장까지 간다. 

피앗재 산장은 대간을 뛰던 형이 추풍령에서부터 한달음에 달려와 잠을 청한 곳이다.  

바람처럼 비호처럼 대간과 정맥. 기맥을 누비던 형은 산 타던 그 기세 그대로 바람처럼 떠나버렸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폴쎄 5년이 지났다. 
행여 형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을까 싶다. 



못제를 지난다. 

대간상의 유일한 둠벙이라는 안내판이 무색하게 완전히 말랐다. 

완벽하게 말라버려서 털면 문지나게 생겼다.  




형제봉에서 지는 해를 본다.
노랫가락이 절로 나온다. 

가슴이 빠개지도록 사무치는 강산이여..



저 멀리 천왕봉



어둠이 내린다.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산장에 도착했다. 

형의 흔적은 산장지기의 기억 속에.. 

산장지기는 형을 각별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떠나간 형을 추억하며 막걸리잔을 기울인다. 



잘 자고 일어나 남은 길을 간다. 

올빼미 운다. 반갑기 짝이 없다. 

고갯마루 불 들어온 텐트 한동, 대간 남진길이라 했다. 

빠뜻한 불빛, 비집고 들어가 자고잡네.



달 뜨고 별 뜨고, 북두칠성이 머리 위에 있었더랬다. 



뜨는 해를 본다. 



천왕봉 인근에서 한남금북정맥이 가지쳐 나간다. 
이제부터는 외약짝으로 한강 수역이 되겠다. 



왜 한숨이 나는걸까?






문장대가 가까워지면서 속리산은 바위산이 되어간다. 

마치 북한산에 온 듯 바위의 모양새나 질감이 유사하다. 

천왕봉~문장대 구간의 거리를 너무 대충 봤다. 

한걸음참 정도로 생각해 두었다가 나중에는 이제나 저제나.. 
아따 겁나 머네 투덜거리며 걸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문장대에 올라 갈 길을 바라본다. 이른바 비탐구간..

문장대 아래 헬기장 방면으로 대간이 이어진다. 







지팡이 던지고 몸 접어 구멍 통과한 후 배낭 벗어 바위에 먼저 올려두고 몸이 지나간다. 

길이 상당히 까탈스러워졌다. 응달진 곳에는 어김없이 눈과 얼음..

우선 지팡이를 접어야 했다. 

엄금엄금, 주섬주섬 길을 이어나간다. 

조망이 열릴 때마다 한동안 바라보고, 찍고.. 

속도가 확 죽는다. 



암릉길이 끝나간다. 

저 멀리 봉황산이 희미하다. 

미세먼지..




밤티재가 얼마 남지 않았다. 

거대한 바위 우뚝 선 작은 봉우리, 조망 좋은 너럭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피앗재 산장에서 싸준 주먹밥이 꿀맛이다. 

밥이 하늘이다. 


암릉길은 완전히 끝났다. 

밤티재 가는 길, 공단에서 훼손지를 복구한다고 등산로에 나무를 심었다.

아마도 진달래인 듯.. 길을 아주 없애고 싶은 모양이다. 

공단은 이 구간을 영원무궁토록 폐쇄할 심산인가?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 길을 이용하고 있다. 길을 없앨 수는 없다. 

공단의 단속도 적극적이지 않다. 

울타리를 벗어나 밤티재 도로에 내려서는 나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더라. 

대간을 이어가는 산꾼들의 열망과 애써 탐방길을 열지 않는 공단의 고집이 충돌한다. 

애꿎은 나무와 무의미하게 투여되는 예산이 아까울 따름이다. 



밤티재 지나 그리 크지 않은 산(경미산)을 하나 넘는다. 

아직은 속리산의 영역인지 여전히 비탐 구간으로 묶어 놓았다. 

경미산 정상 부근, 지나온 길을 더듬는다. 

뾰족뽀족 솟은 속리산 암릉이 보이고 발 아래 밤티재 오르는 도로가 살짝 보인다. 

늘재에 이르니 낙동강과 한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라는 표지판 큼지막하고 백두대간임을 알리는 매우 커다란 표지석도 서 있더라. 

하지만 나는 감시 카메라를 피해 도둑 고양이처럼 산에서 내려와야 했다. 


마중나온 상주시농 회장님과 상봉한다. 

다시 비재로.. 먼 길 가야 한다는 핑계로 바로 헤어졌다. 

곶감 한상자를 안겨 주신다. 몹시 미안하다.

농민대회에서 만나 막걸리 한잔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애틋한 사연을 어찌 알았는지 전농이 3월 15일 농민대회를 잡아 주었다.  

고창 막걸리 존 놈으로 아주 사들고 가야겄다. 

삼천리 방방골골 농민의 깃발이여..



돌아오는 길, 갈전리에 들렀다. 

충북 보은군 마로면 갈전리, 내 생애 처음으로 농활이라는 걸 갔던 바로 그 동네. 

어쩌면 내 생의 갈림길에서 꽤 큰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는 그 동네..

가보면 다 생각날 것 같더니 도무지 모르겠더라. 

갈전리를 찾아가자~ 

노래 부르던 마을 청년의 모습은 눈에 선한데 동네 고샅길은 도무지 눈에 설기만 하더라. 

형편없이 무너지는 산간마을의 초췌한 몰골에 눈시울만 뜨거워지더라. 

행여 꼬부랑 할매라도 만날까 싶어 서둘러 도망 나오고 말았다. 

아~ 삼천리 방방골골 농민의 깃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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