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반백년을 맞아 야심 차게 내디뎠던 백두대간 종주, 달포 가량 나름 쾌속 질주하다 상주 구간에 이르러 4년 동안이나 발이 묶여 있었다. 

산줄기가 약해져 그 옛날부터 온통 신라 땅이었던, 오늘날에도 겨우 면단위나 가르는 곳..
나는 여기를 백두대간의 수랑이라 일컬으며 절반도 못 가고 중단된 내 결심의 박약함을 은폐해왔다. 

그간 상주 땅을 벗어나기 위한 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 때로는 하루를 잡아 쏜살같이 통과해버릴까 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더랬다.

그러는 사이 4년이라는 세월이 덧없이 지나가 버렸다. 

그러니 계획과 구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대간길을 개척했던 초기 답사자들에게 상주 구간은 결코 쉬운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별다른 특징없는 나지막한 칙칙한 잡목 숲에서 헤맬 일 많았을 것이고, 대간 마루금을 일관되게 잇는 뚜렷한 길이 없어 무심코 걷다 보면 샛길로 빠지는 '알바'도 많이 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대간길이 산중 고속도로와 같고 스마트폰에 산중 네비까지 구비하고 다니는 판이니 길을 잃으래야 잃을 수 없게 되었다.  

여하튼 나는 수랑에서 탈출해야 했다. 홀연 길을 잡아 나섰다. 결심은 하루아침에 이뤄졌다. 

 

돌아와 되짚어보니 수랑은 백두대간이 아닌 내 안에 있었다. 

대간이 잔뜩 몸을 움추려 밭 가상 자리, 동네 고샅길을 위태롭게 이어간다 할지라도 대간은 대간이다.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산자분수령'의 위대한 원리가 작동하는 그 이름 백두대간.

 

첫째 날 : 큰재~신의터재(24km)

 

 

영동 수호 형 댁에서 하루를 묵고 나서는 새벽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대간에 접근하면서 비가 눈으로 바뀌고 고갯길에는 눈이 제법 하얗게 덮였다. 

폐교를 개조한 백두대간 생태교육장(백두대간 숲 생태원)이 있는 큰재에서 산길을 잡아 나간다. 

 

 

바람 세찬 백두대간의 아침, 하늘은 찹쌀 가리 같은 눈을 뿌려 4년 만의 귀환을 환영해 주었다. 

 

 

대간 언저리 농장의 개들이 쏟아져 나와 염병하고 짖어댄다. 

특히 저 발발이, 하여 나는 발발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축사의 똥 냄새가 대간길에 공존한다. 

 

 

 

흩뿌린 눈이 대간길을 훤히 밝혀준다. 

오랜만에 나선 대간길 길 잃어버리지 말라는 배려였던 갑다.

오른짝은 낙동강, 외약짝은 금강 수계..

굽이 굽이 흐르듯 이어지는 길을 보며 산자분수령, 그 명쾌하면서도 오묘한 원리를 생각한다. 

 

 

 

상주의 대간길은 조망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빈약해진 자신을 은폐한다. 

그러나 몸을 한껏 낮춘 대간이지만 좌우로 겹겹이 호위하는 좌청룡 우백호 같은 산군을 거느린 탓에 몇 발짝만 내딛어도 첩첩산중에 든 분위기가 조성된다.  

 

 

큰재에서 신의터재에 이르는 오늘 구간의 최고봉 백학산(615미터) 정상, 여전히 조망이 터지지 않는다. 

백학산에 이르는 동안 회룡재, 개터재, 윗왕실재, 개머리재..

대간을 넘나드는 낮은 고갯길을 지나쳐 왔다. 

경운기 끄시고 혹은 괭이 매고 호맹이 들고 대간을 넘나드는 농민들을 상상해 본다. 

이 고갯길을 넘나든 것이 비단 농민들 뿐이겠는가?  

고개마다 덧쌓인 세월과 역사의 무게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눈 앞에 지기재, 그 옛날엔 도적이 자주 출몰하기도 했다는데 과히 믿어지지 않는다. 

저 산을 넘으면 신의터재, 오늘의 마지막 구간이 남았다.  

 

 

지기재 지나 마을 뒷길, 대밭에 갇힌 콤바인, 이앙기, 경운기를 본다. 

저 기계들의 주인은 안녕하실까?

허울일지언정 큰 기계를 갖춘 대농으로 발돋움하셨을까, 아니면 고향을 등지셨을까..

갖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개를 만났다. 검둥아 같이 가자 어르니 따라나선다. 

산길을 잘 아는 듯 올려 뛰고 내려 뛰고 쏜살같이 내달리더니 어서 오라 기다린다. 

 

 

 

이름조차 나와 있지 않은 오늘의 마지막 산, 지나온 길 되짚어보라는 듯 제한적이나마 조망이 터진다. 

능선길 펑퍼짐한 백학산이 보인다. 

 

 

이 녀석 이제 돌아가야 할 텐데 아무리 야단쳐 쫓아도 끝내 신의터재까지 십리길을 따라왔다. 

집에는 잘 돌아갔을까? 아직 어린 녀석인데..

산길 벗어나 새로 만난 고갯길에서 우왕좌왕하던 게 눈에 밟힌다. 

내 어릴 적 경험으로는 암컷은 결코 길을 잃어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예가 없었다. 

이 녀석 암컷이더라. 

 

마중 나온 차를 타고 지기재 산장으로 이동한다. 

예상과 빗나간 장소, 산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컨테이너 건물..

좀 속았다는 생각이 얼핏 스친다. 

하지만 따뜻하게 잘 잤고 그랬으니 됐다. 

그리고 고개까지 태우러 오고 다시 태워다 주고..

 


 

둘째 날 : 신의터재~비재(20km)

 

 

아침 7시, 신의터재에서 다시 산길을 이어간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 동녘 하늘이 그새 붉게 달아오른다. 

검둥이 녀석 혹 차에 치이지는 않았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해가 떠올랐다. 

대간은 여전히 조망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지개산, 대간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그 이름이 이뻐 일부러 찾았다. 

조망 없는 봉우리에 오색 표지기만 흩날리더라. 

 

 

윤지미산, 그 이름 묘하다. 

많은 사람들이 김지미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 본 중국 드라마의 여주인공 봉지미가 떠올랐다. 

좌우튼 뭐.. 조망 전혀 안 터지는 무덤덤한 산이다. 

 

 

윤지미산에서 짧지만 강렬한 내리막길을 타며 생각한다. 

백두대간 남진은 내 인생에 없을 것이라고..

윤지미산에서 화령재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고속도로 소음과 씨름해야 한다. 

 

 

사드? 나도 반대다. 완전 반대..

yankee go home! 아주 좋다.  

 

 

 

화령재를 지난다. 화령재를 지나면서 대간길은 잠시 고속도로를 옆에 끼고 영남제일로와 함께 한다. 
마치 추풍령 분위기, 하지만 대간이 지하로 들어가는 굴욕은 겪지 않는다. 

 

 

이게 뭐더라.. 그렇지,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 집이다. 

 

 

봉황산 자락에 이르러 드디어 조망이 터진다.

봉황산 못 미쳐 산불 감시초소 사다리에 매달려 지나온 길을 더듬는다. 

 

 

멀리 백학산, 무지개산 그리고 눈 앞에 윤지미산이 가늠된다.

 

 

속리산 구간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산줄기가 점차 거칠어지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봉황산(740.8미터), 우리 동네 방장산보다 2미터 낮다. 

 

 

큰재에서 비재에 이르는 대략 110리에 달하는 백두대간 상주 구간이 끝나간다. 

그리고 눈 앞에 새로운 대간길이 펼쳐진다.  

백 리 길 끝난 곳에 천리길 또 있어라..

 

 

산 많다. 이건 뭐 맨 산이네..

새로운 대간길에 대한 기대로 설레는 가슴을 안고 1박 2일 산행을 마감한다.  

4년 만에 다시 이어가는 백두대간, 올해는 꼭 끝내리라. 

그리고 새로 열릴 북녘 대간길 걸을 날을 고대하며 몸 튼튼, 마음 튼튼 단단히 채비해야지. 

 

비재(비조령) 고갯마루에서 상주 사는 청년 농사꾼을 기다린다. 

전농 창립 20주년 되던 해 전농 깃발을 들고 행사장에 입장했다는 이 친구한테 내년이 전농 30주년이라 귀띔했더니 화들짝 놀란다. 

10년 세월이 어디로 가부렀냐고..

나이를 물었더니 40이란다. 

이제부터 세월은 좀 더 빨리 흘러갈 터이니 걱정 말라했다. 

설을 앞두고 곶감 배송에 몹시 바쁜 사람한테 신세 지고 곶감 선물까지 받았으니 이 신세 어찌 갚으랴. 

큰재로 돌아와 꼭 은혜 갚겠노라 다짐하고 헤어졌다. 

삼천리 방방 골골 농민의 깃발이여!

 

백두대간 큰재-신의터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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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신의터재-비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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