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어떤 사람 쿠바 간다는 자랑질에 생각났다. 그래 나도 쿠바에 갔었는데..
어느새 3년이 지났다. 강렬했던 쿠바의 기억도 이제는 남은 것이 별로 없다. 
쿠바는 먼 나라다. 

블로그를 뒤져보니 쿠바에 다녀와서 3개의 글을 썼다.  

 

[쿠바연수1] 쿠바는 굴하지 않는다.

얼마 전 쿠바에 다녀왔다. 그새 보름을 넘어 한달이 되어간다. 누가 말해줬다. "가슴 속에 느낌이 살아 있을 때 메모라도 해놓게. 기억력은 시간 따라 바래고 기억은 편집되는 거라네." 이 말씀을 단단히 새겨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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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연수2] 쿠바의 전봉준, 조선의 호세 마르티

쿠바로 연수를 가자니 쿠바에 대해 아는 게 너무나 없었다. 오래 전 건성으로 읽었던 쿠바혁명사는 머리 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고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쿠바에 대한 새로운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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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연수3] 치졸한 미국

머나먼 이국 땅, 오랜 기간 제국주의 미국과 맞서온 나라, 이래저래 쿠바에 간다는 것은 꽤나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에 잠이 안온다거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거나.. 그런 일은 없다. 그럴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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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남겨 기억해두고 싶은 것들이 많았을 터인데.. 게을러 탈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쿠바 갔던 이야기 하나 꺼내본다. 
우리는 나흘째 되는 날 산타클라라로 갔다. 
장거리 이동, 도로변 풍경은 과히 낯설지 않았다. 
농사꾼들 일하는 모습이야 내나 다르지 않았고, 땅 색깔 하며 광활한 풍경들이 제주의 거친 중산간 지대를 연상케 했다. 

 
 
 
 
 
 

산타클라라는 빌라 클라라 주에 속한 중심 도시라 보면 되겠다. 
쿠바 한복판에 있는 산타클라라는 바티스타의 마지막 요새이자 아바나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1958년 12월 바티스타 휘하 정부군 3천 명과 게바라와 시엔푸에고스가 이끄는 게릴라 혁명군 3백 명이 전투를 벌여 혁명군이 승리를 거둔다. 12월 31일 산타클라라를 점령한 혁명군은 파죽지세로 수도 아바나를 향해 진격한다. 독재자 바티스타는 해외로 도망치고 아바나는 곧바로 혁명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쿠바혁명의 분수령이 되었던 산타클라라 전투, 그 날 이후 산타클라라는 '체의 도시'가 되었다. 
그의 기념관이 그곳에 있다. 
우리는 유서 깊은 쿠바 혁명의 도시를 방문한 것이다. 

Che의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체 게바라) 사령관이여 영원하라!

 
 
 

무기를 수송하던 정부군의 장갑 열차를 탈선, 전복시킨 혁명 전적지를 공원으로 만들었다.
체 게바라는 기관차를 탄선시킨 뒤 화염병으로 공격을 가했다. 정부군이 타고 있던 장갑 열차는 거대한 화덕으로 변했고 장교들은 투항하기 시작했다. 혁명군이 산타클라라를 점령했다. 

산타클라라 시내에서 세월호 노란 리본을 봤다. 무슨 간판일까? 
건강을 위한 교육과 홍보, 예방.. 지역센터, 이런 말들이 번역된다. 
세월호 이전의 무슨 의미가 있겠지 싶다. 

쿠바의 개들은 어딜 가나 여유롭고 편안하게 살고 있더라. 
짜식들 겁나 게을러 보여..

뭔가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했다. 

 
 

드디어 체 게바라 기념관에 당도했다. 
기념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기념관 안 추모관에는 체와 체의 동료전사, 그리고 볼리비아 전사들이 모셔져 있다 했다.
엄숙하고 비장하면서도 단아하게 꾸며져 있었다는 느낌이 남아 있다.

"우리는 한국, 전농에서 온 농업 연수단이다. 기념관 방문 기념품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박물관측에 전했다. 
우리는 손님을 맞는 특별한 방으로 안내되었고, 기념관 부관장(자신을 기념관 둘째 가는 책임자라 소개했다)이 우리를 맞이했다.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기념품을 전달한다. 
전봉준 장군을 소개한다. "조선의 호세 마르티, 한국 농민의 영원한 Comandante"라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전봉준 장군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고맙다고 잘 보관하겠노라 답했는데 어찌 처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기념관 가시거든 주의 깊게 둘러보시라. 혹 어느 한쪽 전시해 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
사령관이여 영원하라!

피델과 라울, 두 지도자가 방문하여 남긴 서명을 보여주며 우리에게도 방명록 서명을 부탁했다. 
뭐라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썼는데..

 
 
 “La arcilla fundamental de nuestra obra es la juventud”
Hasta la Victoria Siempre!!
 
“El trabajo voluntario es una escuela creadora de conciencias"

'자발적 노동'에 나선 체의 모습과 이에 대한 그의 언급, 
관료주의에 반대하고 대중의 창조적 힘을 고취하기 위한 혁명가의 자발적 노동의 중요성, 이를 몸소 실천하는 체 게바라,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듯.. 
"자발적 노동은 의식을 창조하는 학교"(?)
누가 잘 좀 번역해 줬으면 좋겠다. 

쿠바를 떠나면서 피델에게 남긴 체의 마지막 편지

Fidel :
...
나는 나의 아이들과 아내에게 어떤 물질도 남겨주지 않을 터,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네. 
왜냐하면 그들이 먹고, 교육받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가 줄 것이기 때문일세. 
자네에게, 인민에게 할 말이 많았는데, 그것도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드는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종이만 더럽힐 뿐이겠지.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뜨거운 혁명의 열기로 얼싸안으며..
CHE

 
 
"Unir es la palabra de orden: juntos estamos dispuestos a vencer o morir"

기념관 옆 혁명열사 묘역 입구, 여기에도 체 게바라의 말이 새겨져 있다. 
내 맘대로 의역, "단결이란 말은 생사를 함께 하겠다는 결의(동지애)의 표현이다" 
누가 해석 좀.. 

 

우리가 방문할 당시 쿠바와 오바마 행정부가 맺었던 관계 정상화 조치들이 트럼프에 의해 다시 엎어지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 봉쇄와 적대정책이 여전히 엄존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짧은 기간 방문이었지만 쿠바가 미국에 굴종하는 방식으로 나라의 진로를 모색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여 나는 그런 글을 썼더랬다. 
신문사에서 달아준 제목이지만 나는 이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쿠바는 굴하지 않는다." 
Hasta la Victoria Siem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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