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오늘은 시산제, 산으로 간다.
그 시절 산으로 간 사람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숱한 영령..
만나 뵐 수 있을까? 

백무동 가는 길

오전 8시 백무동 주차장, 시간 반을 달려 딱 맞춰 왔다.
날이 몹시 차다. 장갑 속 손가락이 따락따락 아리다.
산으로 든다.  

두터운 얼음짱에 갇혀 다소곳해진 한신계곡, 속삭이듯 재잘대며 흘러간다. 
삐걱대던 몸이 산에 적응해간다. 
걸음에 탄력이 붙는다. 

눈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상고대가 나타나고 본격적인 깔크막이 시작되었다. 
옷을 벗었다 입었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며 체온을 조절한다. 
겨울 산에서는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좋다. 

탄성과 한숨이 교차하는 고빗사위, 타박타박 묵묵히 산을 오르는 사람들.
이쯤 되면 산길은 수행 길이 된다. 

저기만 지나면..

따스한 햇살에 휩싸인 잔돌 고원, 삽시간에 분위기가 바뀐다. 
백운산이 지척이다. 지리산과 한 덩어리로 보이지만 그 사이엔 섬진강이 흐른다. 
산자분수령, 오로지 산길만 걸어 쩌 산에 가자면 천리길을 에돌아야 된다. 

영신봉으로 간다.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 좌우에 거림골과 대성골을 거느린 남부 능선이 뻗어 내려간다. 

난생처음 시산제
묵념, 임을 위한 행진곡, 절, 음복..

1952년 1월 17일은 지리산 온 골짜기를 가득 메워버릴 것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날이 저물면서 빗점골, 거림골, 신흥 등지에서 토벌군에 쫓긴 빨치산들이 대성골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빗점골 의신 부락 뒤쪽에서 토벌대들이 언제 야포를 끌어다 놓았는지 금세 대성골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는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토벌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훤히 내려다보며 토끼몰이를 하듯 포위망을 좁히며 포격을 퍼부어 대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발에 걸리는 것이 시체들이었다. 하루 종일 퍼부어 대던 포격도 총격도 해가 지면서 주춤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쪽 하늘에서부터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 비행기 편대는 네 번 아니 다섯 번쯤인가 대성골 골짜기에 마개가 빠져 있는 드럼통을 삐라처럼 뿌리고 다녔다. 그러다 마지막 편대에서는 주먹만 한 것을 골짜기 곳곳에 날려 보냈다. 바로 소이탄(燒夷彈)이었다. 그 순간부터 하얀 눈으로 덮여있던 대성골은 시뻘건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실록 정순덕>>

반야봉
천왕봉
남부능선
대성골, 섬진강 너머 백운산
반야봉
천왕봉

올라온 길 되짚어 내려간다. 
이런 길을 올랐더란 말이지..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이웃집에 오신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

우리는 이런 시절을 살아왔다. 
이런 시절은 끝이 났는가? 정녕..
국가보안법이, 그 안에 불고지죄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달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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