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자락 생태 탐방원에서 밤을 보내고 원효사로 향한다.
원효사 입구, 사람과 차가 한가득.
차를 돌려 한적할 만한 곳을 찾다 '광일 목장'을 골라잡았다.
그리 멀지 않다. 김밥 두 줄, 물 두 병..
헌데 광일 목장은 사유지,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판도 그렇고 차를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차를 돌려 마을(정곡리)과 목장 사이 임도 입구에 차를 두고 산으로 든다.
북산, 신선대 지나 원효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늦었다. 일단 갈 데까지 가보는 게다.

여기는 담양, 대나무가 임도를 넘어 산을 침범하고 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으나 대나무가 산을 점령하게 되면 숲이 망가진다.

엉겅퀴
산박하

콧노래 되는대로 흥얼거리며 인적 없는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길섶에 피인 꽃 어찌 이리도 고우냐
공중의 찬 바람은 잠잘 줄을 모르난다.
걸 걸 걸음아 무심한 이내 걸음아~
흥 흥 흥겹다 설움에 겨워 흥겹다~

임도를 벗어나 진짜 산길로 접어든다.
아무도 지나지 않은 산길, 거미줄이 성가시게 굴지만 그 맛도 나쁘지 좋다.
바닥에 깔아놓은 야자 매트는 멧돼지들이 다 뒤집고 파헤쳤다.
인공을 거부하는 야생의 반격..

여 봐란 듯이 길 복판에 똥탑을 쌓아 올린 오소리, 그래 이 길의 주인은 산짐승인 것이다.
뭘 먹었는지 뒤적거리진 않았다.

산길엔 온통 도토리, 들판이 흉년이면 도토리는 풍년이라 했다.
들판을 내려다보던 참나무들이 그리 결정한다고..
건강해 보이지 않던 산자락 논배미들이 눈에 밟혔다.

능선을 에돌아가는 길, 전형적인 무등산 돌계단이 이어진다.

북산 정상을 코 앞에 둔 작은 조망터에서 땀을 식힌다.
알 수 없는 산들 너머 백아산, 그리고 저 멀리 구름을 이고 있는 지리산. 호남 동남부 일대의 산들이 눈 아래 펼쳐진다.

언젠가 걸었던 백아산 능선, 위치를 특정할 수 없으나 삼각 고지, 병기과 고지, 총사 고지, 사다리 능선 등의 지명만 기억에 남았다.
그 옛날 빨치산들이 남긴 이름들..
오늘도 반야봉은 구름 속에 들었다.

북산 정상은 아무런 조망이 없고 무슨 시설물이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봉우리 좌우에 조망터를 마련해 두었으니 방금 지나온 작은 조망바위와 곧 가 닿게 될 신선대가 그것이다.
북산에서 처음으로 등산객을 만났다.
오늘 무등산 정상이 열리는 날이라고..
그래서 사람과 차가 몰려들었던 게다.
아침에 좀 더 부지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오후 약속 시간에 늦지 않고 정상을 다녀올 타산이 서지 않는다. 머릿속 계산이 복잡한 가운데 마음은 절로 정상을 향해 달린다.
신선대에 잠시 올랐다 억새 평전으로 내닫는다.

억새밭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비 한 마리 폴폴 날아와 풀밭에 앉았다 사라진다. 물결부전나비, 10년 전 용산 국립박물관에서 보고 처음이다. 어디로 갔을까?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만났다. 너 참 오랜만이다.
그건 그렇고 이리저리 타산해봐도 도무지 답이 없다. 천왕봉은 다음 기회에 도모하기로 하고 엉덩이 털고 일어나 오던 길 되짚어간다.

덜꿩나무

천왕봉을 포기하고 나니 발걸음이 여유롭다.
길섶에 핀 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날 좀 바라봐~ 나를 한 번 담아봐~

구절초
용담
쑥부쟁이

북산 너머 지리산 방면, 하늘이 언제 이리 되었는가?
파랗던 가을 하늘이 사라지고 짙은 구름이 드리웠다.
금방이라도 문 일 날 듯한 이런 하늘 좋다.

신선대
무등산

신선대에서 한참을 머물다..

북산 지나 다시 찾은 조망바위, 무등산과 지리산 사이 뭇 산들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보일 듯 말 듯 반야봉

오늘도 옛 같이 안개만이 서려 있을까?
오늘도 반야봉엔 궂은비가 내리고 있을까?

담양 순창 방면, 무등산으로 달려오는 호남정맥과 주변 산줄기가 치열하다.

능선을 에도는 길을 따르지 않고 능선을 고수하며 하산한다.
거친 산 맛이 좋다.
그 끝자락 수문장처럼 길을 막고 있는 무당거미, 손에 쥔 작대기로 거미줄을 걷어내고 전진한다.
미안하다 무당거미야.

능선길을 버리고 골짜기로 떨어진다.
올라올 때 보지 못한 멧돼지 비빔목, 얼마나 비벼댔는지 나무는 곧 죽게 생겼다.
잣나무였다.

멧돼지가 파헤친 야자 매트의 처참한 몰골, 매트 속 숨어 있던 노끈과 나이롱실이 드러나 산길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어느새 다시 임도, 이제 할랑할랑 걷는다. 약속 시간엔 늦지 않아도 되겠다.
가을, 어쩌면 여름 끝자락 철 지난 여름 꽃들이지만 여전히 곱다.

등골나물
이고들빼기
참취
물봉선
무등산_북산.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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