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고개 넘어 다시 개벽의 시작이다.
살아남은 농민군은 의병이 되었다.
우금티 패전 이후 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 유림이 조직한 민보군에 맞서 삼천리강산을 피로 물들이며 죽어갔다. 이렇듯 광범위하게 자행된 살육전에서도 살아남은 농민군은 산적 혹은 화적떼로 변신하거나 흩어져 몸을 숨겨야 했다. 이런 그들이 항일의병 투쟁에 가담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림이 중심이 된 초기 의병 투쟁에서 농민군은 환영받지 못했다.
춤성심을 품고 의리를 붙들려 하는 자는 몇몇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 그리하여 농민이 천 명, 백 명씩 무리를 이루고는 의병이라 일컬었다. 심지어 동비의 남은 무리가 그 반을 차지했다.(매천야록, 황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강상의 도’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 양반 의병장들은 농민군 출신 의병들을 색출, 처단하거나 평민 의병장을 처형하는 등 스스로 진기를 훼손하면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18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농민군 생존 세력의 재기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97년 일본 영사관은 “충청, 전라, 강원, 함경도 등지에서 잔여 농민군이 출몰한다”는 사실을 일본 외무성과 주한 각국 공사관에 보고했으며, 황현은 “동학의 여당들이 삼남 지방에 출몰하면서 의병에 가담했다”고 기록했다. 1999년 고부 재봉기(영학당 사건), 1900년 지리산포 거사계획 등이 이어졌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2차 의병 시기 황해도와 평안도, 함흥 등지에서 동학 비밀조직에 의한 봉기 계획이 사전에 드러나 좌절됐으나 일대의 민심이 격동했다. 군산 주재 일본 영사관은 “고부, 김제 등지에서 연달아 동학당의 봉기 조짐이 일어나고 고을마다 동학당을 사칭하는 무리가 출몰하면서 일본인을 공격하는데 그들이 때로는 수십 명, 때로는 수천 명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1907년 3차 의병 시기에는 평민 의병장이 대거 등장하게 되는데 농민군 지도자가 농민군 중심 의병을 조직하고 활동한 사례가 나타난다.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활약한 김수민 의병장, 전라도 전해산 의병장이 이에 해당한다. 당시 미국에서 발행되던 <공립신보>에 “전라남도 해남군에 의병 중 남일파 대장 전해산씨는 동학 주장 전봉준 씨의 아들인데 그 기세가 점차 치성하여 그 형세가 굉장”하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의병 활동이 맹렬히 전개되자 일제는 급기야 ‘남한폭도대토벌작전’(1909년)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 작전지역이 오늘날의 전남 지역인 것은 이곳이 농민군의 주요 거점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로써 십수년에 걸친 동학 농민군의 무장항쟁이 실질적으로 종결됐다.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했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 한 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고개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천만 동포야 어데 있느냐 / 삼천리강산만 살아 있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아리랑은 봉건시대를 타파하고 근대로 진출하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 민중의 집단 창작가요다. 아리랑고개를 떠난 님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고개는 열두 구비, 고비마다 한이 쌓이고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다. 우리는 마지막 열세 구비를 힘겹게 넘어가는 중이다. 웅혼한 사람들이 넘어간 고개를 우리도 넘어야만 하는 역사의 필연, 그 고개와 들녘과 강변, 그리고 대둔산 천애의 암벽, 남도 땅끝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던 산천을 찾아가 그 시대 사람들을 조응한다. 그 순결하고 웅혼한 기상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다시 개벽의 시작이다.
(박홍규 초대전 <아리랑고개>,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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