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밤사이 내린 눈이 살포시 쌓여 있다.
내장산 망해봉 위로 붉은 노을을 이고 아침해가 떠오른다.


우리집에도 볕이 들기 시작한다.
섬돌 위에 놓인 신발들이 사람 꽤나 사는 집 같다.
아이들 다그쳐 세배 받고 차례 모실 준비에 들어간다.


차례를 모시려고 병풍을 편다.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 선생이 썼다는 글씨가 그럴듯하기는 하나 의미를 도통 알 수 없다.  
그림이라도 볼 요량으로 반대쪽 면을 선택하여 펼친다.  


다들 작다고 한복을 입지 않고 상대적으로 성장속도가 느린 막내만 한복을 차려입어 설날 아침 모델로 선정되었다. 
한과를 차리는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고 있다. 한 5분은 걸린듯 하다.
차례상이 그럴듯 하다.

차례를 마치고 떡국에 곁들인 반주가 기분 좋은 내곤함으로 몸을 덮친다.
동네를 돌면서 세배 다니는 풍습은 없어진지 오래, 세배 갈데도 없고 올 사람도 없고..
한숨 자고 처가집 가서 한잔 하고 또 자고..
설은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