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오신다는 전화를 1주일 전쯤 제주도에서 받았다.
매우 어려운 손님이 더구나 사위, 며느리와 함께 오신다 하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로 크나큰 우리 집 터는 풀밭이 되기 일쑤였다.
"나 죽으면 사방 간디 풀밭 될 거이다" 하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어머니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이다.
작년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일찍 들었던 추석이 지나고 나서 방치한 가을 풀들이 새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어지럽게 너울거리고 있다.
어머니께서는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집안 풀 단속을 하셨고 그 호미질로도 다스려지지 않는 풀들은 가차 없이 그라목손으로 처단하시었다.
반면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밖으로만 싸돌아다니는 나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로 한 번도 약통을 짊어진 바가 없다.
1년에 겨우 서너번 손을 넣어 풀을 다스리고자 하니 뜻대로 될 리 없는 것이다.

손님이 오시기 전에 어지럽게 너울거리는 그 풀들을 정리해야 했다.
한다 한다 하면서 미루고 미루다 손님이 오신다 하는 당일 해장에서야 낫을 들고 나섰다.
어차피 이제는 이판사판 눈 가리고 아웅이다.
한 두어시간을 나대고 나니 엄벙덤벙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역시 손을 놀려야 뭐가 돼도 된다.
꺽정스러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던 일이 손을 써서야 그럭저럭 해결된 것이다. 

"눈은 게으로고 손은 부지런하다"는 어른들 말씀을 절감하겠다.
손발이 고생한다 하지만 손발이 나서지 않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
하! 저놈의 밭을 언제 다 맬까 하고 눈은 걱정을 앞세우지만 손은 아무 말 않고 묵묵히 그 밭을 맨다.
눈은 늘 즐거움을 보고 좋은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요즘 그 눈이 매우 안되었다.
테레비에 나오는 대통령 이명박이와 그 떨거지들을 보면 눈에 핏발이 선다.
요즘은 눈도 고생이다.
더러운 꼴 안 보고 궂은일 마다하지 않는 손발이 오히려 호강하는 시절이다.
그래도 눈이 보배라 봄이 오는 건 눈이 먼저 알아챈다.

산수유가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명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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