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무도 솔밭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들어갈 일도 사람도 없다.
갈쿠나무(소나무 낙엽)를 땔감으로 쓰던 시절도 가고 솔밭에서 뛰어놀 만한 조무래기들도 사라졌다.
있다 해도 더 이상 나가놀지 않는다.
떼를 지어 놀만한 아이들 집단도 없거니와 굳이 솔밭에 가지 않아도 더 재미난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솔밭이 머리빗으로 빗겨지듯 싹싹 빗겨지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불장난하던 그 시절 솔밭에는 진짜 소나무만 있었다.
그런데 그 솔밭이 지금은 대밭이 되어버렸다.
동네를 삥 돌아 대밭에서 뻗어들어간 대나무가 솔밭을 거의 집어삼키고 말았다.
나는 지금 그 대를 제거하고 솔밭을 다시 복원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하였다.
우선 대나무를 모조리 베어제끼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망을 치고 닭을 집어넣으려 한다.
허적거리기 좋아하는 닭들이 새로 돋아나는 죽순을 제거하리라는 계산도 있고 아무래도 달걀 판이라도 주워내려면 사람도 들락거리고..  그러다 보면 대나무가 잡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대나무를 열심히 베어내던 어느날 머리 위에 무시무시한 물건이 나타났다.
농구공만한 말벌집이다.
두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말벌에 쏘이면 겁나게 아플거라는 것과 말벌집으로 술을 담궈먹으면 좋다는 주워들은 풍월. 
벌집과 웬만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 방면에 조예가 있을만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지금 있는 말벌 집은 다 빈통이라 한다.
무단히 겁먹었다.
말벌은 겨울이 오기 전 짝짓기 후에 여왕벌만 남기고 모조리 죽는다 한다.
여왕벌 단 한마리만이 살아남아 모처에서 월동을 하고 새 봄이 오면 여왕벌 혼자 집 짓고, 알 낳고, 새끼를 키워낸 후 일정한 집단이 형성되면 그 여왕벌은 수명을 다 하고 가을이 되면 새로운 여왕벌과 수벌이 생겨나 다시 짝짓기하고 나머지는 다 죽고..
그렇게 말벌세사은 돌아간다.
참 특이하다.


출입구는 하나 뿐이다. 여기만 틀어막으면 말벌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말벌은 꿀을 모으지 않는다.
육식성이어서 작은 곤충이나 애벌레, 꿀벌 등을 잡아먹고 자신의 애벌레에게도 먹인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말벌집을 노봉방이라 부르고 약재로 쓴다.
특히 기력회복에 좋다 하니 기력 약하신 분들 벌집 보시거든 출입구만 틀어막고 따다 잡솨보시라.
고요한 달밤 쑥으로 틀어막아야 벌들이 뚫고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이 내부의 애벌레 집을 약재로 쓰는 모양이다.
애벌레까지 포함해서 쓰는지 집만 쓰는지는 모르겠다.


바닥에는 얼어죽은 말벌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다.
여왕벌은 어디로 가서 겨울을 났을까?
새로운 성충은 6월경에 출현한다 하니 지금쯤 어디선가 새로운 세대를 키워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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