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오후에 뜨는 배를 타고 목포에 내리면 9시 한 반쯤 되고 11시발 새마을호를 타기에는 뭘 하기에도 어정쩡하게 시간이 남는다.  

목포항에서 역 쪽으로 타박타박 걷다 보면 역 바로 못미쳐 흑산홍어를 파는 덕인집이라는 주점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배를 타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고 배 안에서도 줄곧 술을 마시면서 왔다.

그렇게 배에서 내려 역으로 가다 취중에 들어가 홍어에 막걸리에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마시다가 뛰다시피 하여 간신히 기차에 올라탔었다. 

홍규 형이랑 그랬다. 그때 남은 것이라곤 "아따 되게 비싸네" 하는 가격에 대한 부담스런 기억 뿐이었다. 

그 후로 또 언젠가 같은 이유로 홀로 그 길을 걷다가 어두운 밤길에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그 집을 발견하였다.  

아! 저 집이구나 하는 기억을 새기며 기회가 닿으면 꼭 한번 다시 가겠노라 마음을 다지며 사진만 박아두었더랬다.  

 

 

이번에는 전농 총장님이랑 함께 같은 이유로 그 길을 걸었고 덕인집에 들어가 막걸리에 홍어를 주문하였다. 

다만 나는 술을 안먹기로 한지라 그냥 홍어만 먹었다. 술을 입에 대지 않은지도 보름이 되어간다. 

막걸리 없이 먹는 홍어가 불 꺼진 항구요, 빤쓰 없는 고무줄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냥 홍어만 먹었다.

직접 담근 막걸리인 듯 한데 앞에서 먹는 사람이 무쟈게 맛있다고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마신다. 구기자 인삼 막걸리락 했던가..   

 

 

홍어가 나왔다. 잘 삭힌 것과 싱싱한 것을 반반 섞어 동그랗게 배열하고 가운데에 코빡 등 특수부위를 쌓아놓았다.

적은 양이 아니다. 

소금장 찍어 한점 집어먹는다. 

아~! 흑산 홍어맛이 이런거로구나.. 홍어회로 달성할 수 있는 맛의 새로운 경지를 경험한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맛이다. 

얼마 전 전농 후원주점에서 썼던 진품 흑산홍어에서도, 금메달식당 홍어에서도, 또 어디냐.. 순라길 홍어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경이로운 맛이다. 

 

 

삭힌 것은 삭힌 것대로..

홍어 특유의 삭힌 향이 씹으면 씹을수록 은은하게 터져 나온다. 씹는 맛은 부드럽고 찰지고 싱싱하다.

삭힌 홍어가 자칫 빠져들기 쉬운 들큰함도 퍼걱거림도 없다. 또 뭐라 하나.. 좌우튼 이럴수도 있구나 싶다. 

 

 

지금까지 먹어본 삭히지 않은 싱싱한 홍어는 대부분 비린내가 났다. 그래서 안먹어왔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비린내는 오히려 홍어 나오기 전에 맛있게 먹었던 꼬사리너물에서 느껴질 정도다. 

흑산도 사람들은 싱싱한 홍어를 먹는다더니 이 맛인 모양이다. 

역시 부드럽고 찰지고 싱싱히다. 

 

 

김치맛 참 환상적이다. 홍어 없이 김치만 가지고도 막걸리 한말은 없애겄다. 

 

 

먹고 일어나려는 차 "애는 묵고 가셔야제" 하고 붙잡는다. 

앞에 앉은 사람, 그 덕분에 막걸리 한잔 더 하시고..

애 맛도 그렇다. 고소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입 속에 넣고 더 이상 씹을 것이 없을 때까지 씹어 삼킨다. 

지금까지는 사실 대충 씹어 삼켜왔다.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껄쩍지근함이 있었다. 맛도 그렇고..

애하고 같이 나온 것은 간이라 했다. 그런데 애가 간 아닌가?  모양새로 봐서는 간이라고 한 것이 간같이 생겼는데 그럼 애는 무엇인가? 

좌우튼 이 또한 먹을 만하다. 

 

막걸리 5천원, 홍어 7만원, 합이 7만5천원이다. 

이번에는 비싸다는 생각보다는 참 맛나다는 생각이 뇌리에 확고하게 박혔다. 

인자 제주도 가면 올때는 목포로 배 타고 와야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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