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밤낮을 시청광장 농성장에서 지냈다. 

마당이 넓어 화장실이 너무 먼 것을 제하고는 부족한 것이 없는 농성장이다. 

노숙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진보당원들, 지금도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재능교육 노동자들에 비하면 호사스럽기까지 하다. 

토요일 새벽, 농성장을 나서 관악산으로 향하였다. 오늘 하루는 땡땡이다. 

4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고 관악산을 검색한다. 어디로 오를 것인가..

6봉능선이 눈에 띈다.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 구미를 당긴다. 

하산길은 시간을 봐가며 정하기로 하되 입산길은 결정되었다. 



과천종합청사 7번 출구, 계단이 꽤 길다. 

계단 밖 늦은 단풍 아래 등산객 하나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안개가 자욱하다. 종합청사에서 왼쪽으로 꺾어 청사를 끼고 관악산 쪽으로 걷는다. 

국사편찬위원회 앞을 지나는데 개울 건너 산으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자욱한 안개로 사위가 가늠되지는 않지만 제법 흔적이 뚜렷하여 개울 건너 숲길로 접어들었다. 



밤나무, 참나무 등이 섞인 활엽수림이 잎을 떨구고 활량하게 서 있다. 그나마 안개가 감싸고 있으니 낫다 싶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중무장한 철책을 만났다. 어랍쇼.. 무신 군부대가 있나?

철책을 따라 얼마간 걸으니 숲을 뚫고 지나는 작은 아스팔트길, 군부대로 가는 길이다. 하릴없이 다시 큰길로 나오니 입구에는 무슨 통신사령부 어쩌고 하는 팻말이 서 있다. 

흉흉한 시절이다. 어릴적 외우다시피 했던 간첩식별 요령에 따르면 이른 새벽 이슬 털며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가차없이 신고하라 하지 않았던가?
국정원 새끼들 눈에라도 띄었으면 영락없이 통신시설 파괴를 노리는 아르오 조직원으로 찍혔겠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알바 지대로 해부렀다. 

▲ 저 암봉으로 오르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군부대 바로 인근에서 제대로 된 등산로 안내 표지판을 만났다. 

기술표준원, 백운사 등의 표지판이 보이는 곳이다. 

등산로라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문원폭포까지 가서 거기서 길이 갈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초행길인 경우 그렇게 해서는 6봉 능선으로 가는 길을 찾기가 다소 어렵겠다. 

곧바로 능선길로 붙어서 산불감시초소 방향으로 가던가, 백운사 방향으로 갔어야 했다. 

문원폭포 부근에서 갈리는 길은 초보자들은 가지 말라는 경고판이 붙어 있고 길이 이어질 듯 끊길 듯 희미하게 나 있다. 

계곡물은 완전히 말라 있다. 폭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길이 없다. 

타고 넘었던 넓직한 바위가 폭포였던 모양이다. 

가장 뚜렷한 길을 따라 걸어 산 깊이 들어가 능선에 오르니 6봉능선, 8봉능선 다 지나 8봉능선이 주릉과 만나는 지점에서 살짝 벗어난 곳의 작은 암봉이다. 



청계산이 바라다보이는 과천 쪽은 구름이 깔려 도시의 건물들을 감춰버렸다. 해도 그 짝에 있어 사진찍기가 영 고약스럽다. 



8봉 능선 너머 쩌 산은 무슨 산일까? 지도를 살펴보니 삼성산이다. 삼성산과 관악산을 동시에 타넘기도 하는 모양인데 꽤나 멀어보인다. 



저 너머가 6봉능선이니 꽤나 엉뚱한 곳으로 올라와버렸다. 문원폭포에서 갈라선 길을 오르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이어지는 듯한 능선에 잠시 올라섰다 능선을 버리고 계곡길을 타고 주릉 방향으로 오른 탓이다. 너무 멀리 에돌아가는 길로 보였다. 

당초 작정했던 6봉능선을 타지는 못했으나 시간은 많이 단축되었다. 




능선 위에 솟은 암봉들이 아기자기하다. 바위를 타넘을 수도 있고 애돌아갈수도 있다. 



8봉능선의 봉우리들이 늘어섰다. 아무리 세어봐도 일곱개, 한개는 어디로 갔을까? 



KBS 중계소 지나 길이 여러갈레로 나눠지는 깔딱고개에 당도하였다. 서울대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이 가팔라 붙여진 이름인 모양이다. 

과천 방향은 여전히 구름바다, 새로 쌓은 석탑과 구름바다 너머 청계산의 풍경이 그윽하다. 

 능선을 타고 사당 방향으로 가고 싶지만 마음 뿐이다. 산아래 사람사는 동네에 볼 일이 있어 더 머물기가 어렵다. 

연주대 방향으로 조금 나아가 사진 한장 박고 돌아서 서울대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6봉능선으로 제대로 길을 잡아 올랐다면 시간 때문에 낭패를 볼 뻔 했다. 


▲ 관악산 정상과 연주대


▲ 하산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깔딱고개에서 서울대 방향으로 내려선다. 뭐 그냥 내리막길.. 무르팍 상할새라 살금살금 내려왔다. 



기술표준원 뒤편 입구(8:20) - 문원폭포(8:40) - 능선(9:25) - 깔딱고개(10:00) - 서울대(11:00)

2시간 40분 가량을 산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