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도 농업연수를 진행하는 동안 인도 농민, 관계자들과 몇 차례 간담회를 가졌다. 

시간 제약, 언어소통의 문제 등으로 당초의 목적에 다다르지 못했다. 

연수단의 방문 목적을 사전에 충분히 전달하고 인지시키지 못한 문제, 연수단 스스로의 사전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던 문제가 컸다. 

대담자의 지위와 처지에 따라 엇갈리는 답변, 인도 농업현실에 대한 상이한 진단들이 연수단을 혼란케 했다. 

무엇보다 시간을 충분히 배정하여 깊이있는 대화를 시도했어야 한다. 간담회가 매번 형식적인 탐색전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보지 않은 것보다는 낫겠지만 비용 대비 성과를 따져본다면 성공적이지 못한 연수였다 할 것이다. 

다시 한번의 기회가 있다면 실패를 거울삼을 수 있겠으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힌두대학교 내 Institude of Agricultural Science (농업과학연구소) 간담회

 

▹에스킨신 박사 (Agriculture center  책임자)의 대학 소개

-바라나시 시뿐 아니라 아시아 최대 규모 농업대학이다. 학생 수가 3500여 명이다. 1916년 민족주의자 말라비야가 대학을 설립하였다. 영국 식민지 시절, 서구적 가치가 젊은이들 사이에 뻗어나가는 것을 개탄해 힌두의 전통적 가치를 부흥시키기 위해 만든 국립대학이다.

농원에서 새로운 쌀 개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대학 내에는 농원만 20여개가 있다. 식탁 앞에서 큰 소리로 웃지 마시라, 날아가는 쌀이 있을 것이다. 또 1inch 짜리 긴 쌀도 있다. (웃음)

 

▹연수단 단장의 연수단 소개

-전북은 한국의 대표적 곡창지대다. 인도의 식량보장법에 관심이 많다.  제정 과정과 그 의미를 알아보고자 방문하였다. 

 

문. 인도의 농업 현황과 조건은 대략적으로 어떠한가?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답. 농업대학이 인도에 60여개가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농업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좋은 종자 보급에 노력하고 있으며 비료도 정부의 보조로 낮은 가격에 보급한다. 농기계 구입 자금도 정부의 보조가 있다. 

이것은 농민만이 쓰는 크레딧 카드로 농민에 금전적 지원을 곧바로 하고 있으며 소득보장을 위해서도 노력한다. 농민과 최저 빈곤층에 월 생활비와 곡류(식량)를 무상 지급한다. 농민에게 제값을 주고 사서 빈곤층을 위해 나누어 주는데 이것은 잉여농산물이 생기지 않게 농민을 지원하는 효과도 있다. 

 

문. 농산물 가격 결정은 어떻게 하나? 

답. 정부가 한다. 중앙정부 내 가격결정위원회를 두며 위원회에 농민이 참여한다. 

 

문. 인도의 유기농업 현황은 어떠하며 정부 지원이 따로 있는가? 

답. 다수확을 꾀하다 보니 유기농업 면적은 적다. 인구는 많고 빈곤지역도 많다보니 생산량이 떨어지는 유기농업을 잘하지 않는다. 그러나 쌀, 밀, 콩 등은 관행농이지만 과일은 유기농업으로 경작한다. 그리고 일부 농지가 좁은 지역은 전면적인 유기농업을 실행하는 곳도 있다.

 

문. 인도의 주식은 쌀인가? 주식이 되는 작물은 정부에서 100% 수매하는가? 

답. 북인도는 쌀과 빵(밀)이며 남인도는 주로 쌀이 주식이다. 기후가 다르다보니 주식이 다르지만 쌀 재배면적이 많다.

 

문. 쌀, 밀, 콩 외에 모든 농산물을 다 수매하는가? 식량자급율은 어떠한가?

답. 밀, 쌀, 두류, 녹두 등 식량류만 정부가 수매하고 감자, 양파, 과일 등은 과다 생산되는 지역의 것을 부족한 지역으로 판매하도록 유도하는 역할만 한다. 

예전에는 쌀만 수출하였는데 요즈음은 밀도 수출한다. 3~4년 비축미를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수출한다. 오일류는 모두 수입이다. 북인도는 유채 농사가 많아 유채기름, 참기름, 땅콩 오일을, 남인도는 야자수가 많아 코코넛 오일을 생산한다. 오일류 농사가 많지만 인구 대비 부족하여 수입을 하고 있다. 

 

문. 국가 수매를 위한 정부예산 확보는 어떻게 하고 있나? 

답. 중앙 정부가 예산을 세우고 지방정부(주 정부)가 집행한다.

 

문. 식량보장법 제정 이후 잘 추진되고 있는가?

답. 잘 되고 있다.

 

문. 연구소에서 한다는 ‘종자연구’는 토종종자에 관한 것인가, 다국적 종자회사가 꾀하는 GMO 종자 등을 개발하기 위한 것인가?  

답. 종자는 토종으로만 사용하지 수입하지 않는가. 따라서 GMO 종자는 없다. 종자를 개발하여 농민에게 무상지급하기 위한 것이다. 농가부채로 자살하는 농민보다 사채 때문에 힘들어하는 농민이 많아 농가 파산을 막기 위한 노력이다.

 

 

 

 

바리야와 마을(존 푸레 주) 농민과 BKU 회원과의 간담회

 

유피 주() BKU 책임자 , 유피 주 국회의원, 집주인(교사 부부), 아미뚜마 싱 씨(교사이자 농민), 비네뚜마 빤네 씨(마을 최대 농지 소유자이자 농민운동가)

-전통차인 짜이와 인도식 만두를 내와 대접

-마을로 걸어 들어오면서 참깨, 옥수수, 쌀 등을 보았을 것이다. 강수량이 적어서 그런 조건에서 잘 자라는 작물만 잘 크고 나머지는 빈 땅으로 놀리는 경우도 많다.

 

문. 인도까지 오게 된 이유는 전 세계 농민의 공통된 고통이겠지만 한국의 농민들도 농산물 가격 문제로 고충이 있다

답. 나라에서 가격 보장을 해준다. 가족이 소비하기 위한 농사도 짓지만 그보다 남는 물량은 한다. 그러나 시내까지 나가 판매하기 힘들어서 그 역할을 정부가 해준다.

 

문. 식량보장법의 혜택을 직접 느끼고 있는가? 

답. 농민들은 농사짓기가 정말 좋다. 식량보장법은 하리아나 주(州)만 전면 시행되고 있고 다른 지역은 아직 준비단계다. 그러나 점차 확대될 것이다.

 

문. 정부가 농산물을 고가 매입, 저가 판매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WTO 규정에 위반되는 이중곡가제가 아닌가? 

답. 10루피에 사서 1루피에 공급하고 9루피만큼의 차액을 정부가 감당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국내 농산물 수급과 관련한 정부수매에 WTO는 무관하다.

 

문. 농민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는가?

답. 농사짓는 일에는 만족하지만 제반시설이 부족하고 열악해서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 한국농민의 부채 문제는 심각하다. 농가부채라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가?

답. 농민을 위한 크레딧 카드가 발급된다. 농지 빌리고 영농하기 위해 카드를 쓰고 수확한 훼 갚는다. 다른 신용대출이 11~12%인데 비해 년 3%의 저리이다. 수해나 가뭄 등으로 농사 망쳐서 돈을 갚지 못할 처지일 때는 원금을 탕감하고 이자도 없으며 오히려 배상을 해준다.

2013년에도 한 해 2억 정도를 탕감하였는데 이것은 ‘농민’에 한해서만 실행되는 정책이다.

 

문. 농민을 향한 정부의 지원이 그러하다면 왜 가난한 농민이 많은가?

답. 정착하고 농사를 짓는 농민 대부분 땅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빈곤층이 거의 없다. 이동하며 사는 농민들이 어려움이 많다.

 

 

 

BKU 대표 샴쉐르 싱(하리아나주 책임자) 씨와의 간담회

 

문. BKU의 역사에 대해 말씀해 주시라.

답. BKU 란 바르티(Bbhartiya 인도의 다른 이름) 기산(Kisan 농민) 유니온(Union 연합), 정치인과 무관하게 개인 회원이 참여하고 정부에 등록된 단체이다.

-1920년대부터 태동되었고 1989년에 마헨드 싱 다케트 (바하르 主) 씨가 초대 대표로 활동하면서부터 확대되었다. 당시 델리에서 최대 정부 투쟁이 있었는데 100만 농민이 운집하였다. 수도에서 3~4일 간 투쟁하여 당시 대정부 요구안을 모두 상원에서 관철시킨 쾌거를 이루었다. 당시 간디의 아들(라지르 간디)이 수상을 할 때이다. 

-조직 구성  최고 책임자, 부책임자, 실무자 3명이 중앙단위에 있다. 지역 (州) 책임자, 시 책임자, 시내 동서남북 지부..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단체는 아니다. 국가에 소속된 단체도 아니다. 지역 조직이 회비를 내는 것도 아니고 투쟁이 있을 때 그 경비(운행비, 식대 등)를 분담해서 운영한다.

-인도 내 농민의 지위는 높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먹거리 생산과 공급이 어렵다고 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 자기 이익 때문에 조직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정의와 농민 이익 증대를 위해 활동한다. 나도 농사를 짓지만 신념에 따라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 복지와 농민이 잘 사는 사회를 위해 자비를 들여하는 것이다. 농민이 행복한 모습을 볼 때 만족감을 느낀다.

-인도가 1947년 8월 15일 독립한 지 68년이 지났지만 식민지 시대 법은 바꾸어야 사회 변화가 있다. 민간의 힘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농민의 투쟁으로 정부가 개혁 입법을 하도록 압박하는 투쟁을 하는 것이다.

-농지 인도의 땅은 농민의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에는 정부가 마음대로 땅을 빼앗을 수 있었다. 2014년 BKU의 투쟁으로 법을 제정하여 토지 소유자의 동의가 있어야 정부의 토지 수용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 법이 통과된 후에는 농민의 허가가 80% 이상 있어야 하며 배상도 두둑이 받고 있고 아파트 등 주거지 확보나 일자리 제공 등이 보장된 후에 국가가 개인 토지를 매입(수용)할 수 있다. 단 국가 기간 사업에 쓰일 토지는 농민의 동의 없이 매입이 가능하다.

-식량보장법  이것은 정치인들이 자기 표관리 위해 정치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만든 법이지 농민을 위한 법은 아니다. 빈민, 토지 무소유자를 위한 사회보장 차원에서, 거듭 말해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법이지 BKU 와도 전혀 무관하다. 경작 농민이 소비하고 남은 농산물의 보관과 관리 위한 창고 저장 등의 내용이 이 법에 있기는 하다.

-BKU가 역점 두는 활동 농촌 아이들이 학업에 많이 소홀하다. 좋은 학교가 있어서 교육을 잘 받길 바라고 기계화되어 농업 노동이 편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전기, 수도 공급이 시급하다. 발전기를 이용하는 농촌이 많은데 그 연료인 기름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2003~4년 인도 수상 시절에 마을 간 도로 연결이라든지 댐 건설, 강을 연결한 농수 확보 등 농민을 위해 많은 것을 시도하고 또 성공도 거두었다. 현재의 수상도 그와 유사한 정치활동을 한다. 인도에서 필요한 물은 히말라야에서 내려온다, 이 물이 그냥 흘러내려 바다로 나가지 않고 논밭으로 흘러가 농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4계절이 있는 인도이지만 항상 덥고 항상 건기이거나 항상 우기인 지역도 있다

-인도 농민의 현실 인도의 농업 역사는 매우 길다. 그리고 농사를 지어야 온 국민이 먹고 산다. 50년 전 즈음에는 국민의 80%가 농민이었다면 지금은 농업 현황이 나빠서(농기계 문제, 물 사정, 전기 공급 사정 등등) 국민 중 60%만이 농업에 종사한다. 이농하여 도시에서 장사를 한다. 

-대정부요구안 정부를 향한 농민의 요구안은 매우 많다. 그러나 다 들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제일 시급한 것은 농기계 보급 문제다. 현재는 거의 손으로 이앙한다. 기계가 많이 들어와 짧은 시간에 농사를 하고 재배하고 수확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루 종일 들에서 고생하지만 일을 진척되지 않고 고생이 너무 많다.  

 (1. 필요한 만큼의 전력 공급  2. 농기계 보급 확대  3. 농산물 생산 가격 보장 4. 농민 무상 교육  5.  농촌에 병원 시설 마련)

 

문. 농민이 토지를 구입하려고 할 때 정부의 융자가 있는가?  

답. 정부 보조가 75% 정도다.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농민은 물소를 키워 우유 장사를 하거나 년 1~2만 루피의 임대료를 내고 소작농이 된다.

 

문. 토지가 없는 농민의 비율이 얼마나 되나? 

답. 토지 소유 농민이 70%, 무소유 농민이 30% 정도다. 농업이 가업으로 이어지다 보니 농업 인구가 늘어나서 농지가 부족한 지역도 있다. 수도 델리는 외국인의 토지 투자가 늘어나서 농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라자스탄, 번잡, 하리야나 주에 토지를 소유한 농민의 수가 가장 많다.

 

문. BKU 외 다른 농민 조직도 있는가? 

답. 자생적 농민조직은 없고 “농민혁명”이라는 정치조직과 “농민연맹”이라는 조직이 있다. 그리고 주와 동에는 BKU와 무관한 조직이 있는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 지역에서 활동하다 공동의 협력이 필요한 거대 사안이 생기면 연대한다. 조직의 규모로서는 BKU 가 최대 조직이다.

 

문. 농촌 내 여성농민의 지위는 어떠한가? 여성농민조직은 따로 있는가? 

답. BKU 내에 청년조직, 여성농민 조직, 50대 이상 조직 등으로 분화되어 있다. 그리고 큰 투쟁에서 여성농민을 앞세우고 많이 해왔다(웃음). 고속도로 , 철도 점거 투쟁 때 여성이 앞장섰다. 정부도 여성농민을 가장 두려워한다. 

 

문. 토지소유 등 여성농민의 경제적 지위는 어떠한가?

답. 남편 있는 여성이 토지를 따로 소유하는 일은 없다. 

 

 

 

 

 

▶ 하리야나 주 농민 투쟁 현장 방문 

 

▹농사짓는 이들의 땅 74,000ha를 정부가 국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장을 짓겠다고 헐값에 매입하여 개인 건설업자에게 비싸게 되팔아 아파트를 짓도록 허가하였다. 그래서 하리야나 주 BKU 소속 농민들과 지역 주민들이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농성 중인 BKU  하리야나 주 대표 마주아 씨와 회원 50여 명이 연수단을 맞았다.

 

▹활동가 소개 및 인도, 전북 대표 인사

-연수단 토지를 지키는 농민의 투쟁은 전 세계 농민의 연대의 힘이다. 더운 날씨에 애쓰시며 반드시 이 투쟁에서 승리하시길 바란다. 

우리는 식량보장법 추진과정과 농민 삶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인도에 왔다. 며칠 머무는 동안 농민의 삶과 농업 현실에 대해 많이 느끼고 있다. 한, 인도 농업 현실에 차이는 있으나 열악한 교육 현실이나 토지 착취 등 투쟁 사안이 산적해 있는 것은 유사하다. 힘내시고 꼭 승리하시기를 다시 한번 기원한다. 

 

-BKU 마주아 멀리서 오신 농민단체 대표님들을 만나 반갑다. 농민은 어느 나라에 있든 자신의 땅을 사랑하고 토지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다른 나라 농민과 달리 이 지역 농민에겐 특별한 문제가 있다. 농민을 위해, 국민을 위해 농산물을 많이 재배하고 있지만 원하지 않는 죽음, 자살이나 기아라는 문제 역시 맞닥뜨리고 있다. 예를 들자면 논을 빌려 우기에 농사를 지으려 했지만 비가 오지 않아 농사도 짓지 못하고 돈도 갚지 못하면서 농민이 자살하게 된다. 많은 나라가 정부 보조로 농사짓고 있지만 인도의 보조는 너무 적어서 힘겹다. 농민의 아이들은 교육도 못 받고 취업도 못해서 농촌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1년 12달 내 가족 중 한 명 정도씩 죽음을 맞는다. 비참하다.

멀리 한국에서 투쟁 현장에 와주신 동지들께 감사하며, 한국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도 찾아 달려가겠다. (구호 제창)

 

-연수단 : 뜨겁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하다. 인도에 머무는 며칠 동안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열심히 일하는 농민의 모습에 감동받았다. 그렇지만 인도 농민도 고통과 어려움 속에 놓여있다는 데에 아픔을 느낀다. 한국은 인도에 비해 면적은 적지만 전기, 물 등 기반시설은 잘 되어 있다. 그러나 농민은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농가부채 등으로 고통을 더 받고 있다. 생산비보다 낮은 농산물 가격 때문에 살기 힘들다. 정부가 농업을 내팽개치고 수입개방을 전면화하기 때문이다. 우리 농민의 과제는 수입 농산물 막아내고 농산물 제값 받기 위한 투쟁이다. 함께 연대 투쟁하자. 여성농민을 직접 만나 뵐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함께 구호(전 세계 농민 Down Down WTO! Down Down FTA!)를 외치고 농민가 제창

 

 

 

 

딘 반두 초투람 대학(university of Science Technology), BKU 대표단과의  간담회

 

▹대학 총장 인사

 

-우리 대학 방문을 환영한다. BKU 농민들도 환영한다. 인도의 풍습, 아타티 대아파(손님이 신이다)! 우리 대학은 설립자의 이름을 따왔다. ‘대학 이름에 쓰인 초 투람은 유명한 농민으로서 정치까지 하신 분이다. 인도 독립 전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열성 농민이자 노동자의 벗이기도 한 분이다. 그래서 딘 반투(딘 반투’란 좋은 일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존칭의 의미)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이다. 이 분은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되었던 사람이다.

하리야나주는 농업 주로 유명한 곳이다. 하리야나와 번잡 주, 유피 주, 라자스탄 주 이렇게 4개 주는 수출까지 가능한 농사 규모이다. 하리야나와 유피주 사이를 흐르는 야무나 강 주변 지역은 인도의 밥그릇이라 불릴 정도로 쌀과 밀의 주산지이다. 이들 주는 농사에 필요한 기계 등 모든 현대적 방법을 이용한 농사를 짓고 있다. 어려서부터 농사를 직접 보고 자라 잘 알고 있다. 초투람 씨가 만들어낸 농법은 그 이후 많은 농민이 따라 하게 되었다. 농사 어려워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 농법 사용 이후 그런 일이 줄어들었다. 우리 대학도 새로운 농법을 개발하고 가난한 농민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우리 대학을 방문한다는 말을 갑작스레 들었다. 워크숍 등 더 준비할 수 있는데 아쉽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와 인도 농민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좋은 일이다.

다음 발언은 조심스럽다. 한국은 남, 북으로 갈라져 살고 있다. 독일도 분단 이후 통일하였다. 우리는 신을 믿는 나라이기 때문에, 남 북 두 나라가 합쳐서 함께 한다면 더 힘 있고 큰 나라가 될 것이라고 기도한다.

 

▹연수단장 인사

총장님까지 오셔서 환대해주셔서 감사하다. 한국 농민의 현실을 먼저 말씀드리고 우리 연수단의 목적을 말씀드리겠다. 그리고 인도에 온 소감과 여러 인도 동지들을 만난 내용을 말해보겠다.

대학으로 오는 길에 토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투쟁 현장에 다녀왔는데 한국도 마찬가지다. 도시 확장으로 농지가 축소되고 투기의 대상이 되어 농민이 농사지을 땅이 사라지고 있고 갚을 길 없는 농가부채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 농민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가격이 폭락하는 것이다. 또한 WTO 출범 이후 한국 농산물 시장이 전면 개방되고 한국인의 주식인 쌀 시장마저 전면개방 위기에 있다. WTO는 한국 정부의 농업 정책까지 좌지우지한다. 정부수매제 폐지, 농업 예산 축소로 농민지원이 줄었다. 결과적으로 식량자급률이 세계 최하위 수준인 20%대로 추락했다.  

농민들은 전면적인 농정개혁을 요구한다. 정부가 책임지고 농업과 농민을 살리는 정책을 펼 것을 요구한다. 외국 농산물 의존하지 않고 안전한 농산물을 국민에 보급하고 식량자급을 이루는 것이 목표이다. 

이런 조건에서 인도의 식량보장법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 정부에게 요구하는 농정개혁의 내용, 농민 투쟁 요구안인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와 매우 흡사하다. 이 법의 제정 과정, 인도 농민의 입장과 견해를 듣고자 한다. 인도의 식량보장법이 WTO 규정 위반이라는 미국의 공격이 있었는데 인도 정부가 이를 효과적으로 물리치고 관철시킨 점 또한 주목하였다. 그래서 농민과 정부 관계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 인도에 와보니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점도 보인다. 한-인도 농업과 농민의 처지가 다른 점도 있고 WTO로 인한 피해가 인도는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민으로서 숙명적인 고통은 한-인도가 동일하다고 느끼기도 하였다. 하리야나 주가 식량보장법이 시행되는 유일한 주로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한국 농민이 겪고 있는 가격 문제, 인도 농민은 없는지 비슷한 사례를 들어 말씀해 달라. 한국 농민은 본인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 결정권을 스스로 갖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동안 바쁜 일정 중에서도 우리의 여정과 함께 해주신 샴 쉐르 씨와 BKU 회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대학총장

여러 나라를 방문해 보았는데 농산물을 제 값 받지 못하는 것은 공통되는 문제이더라. 

소똥이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거름으로 사용할 수 없게 하는 정부 때문에 이주하는 농민들도 보았다. 

본인도 한국과 인도 농민의 만남을 주선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다시 우리 대학을 방문하게 된다면 3일 정도 워크숍을 하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하리야나 주 BKU 회원, WTO에 대하여

인도 농업 현실에 대해 많이 알리고 싶다.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도움을 떠나 농민 스스로 많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농사를 짓고 상도 받았다. 버섯 농사다. 나도 역시 농산물 가격을 농민이 직접 정하고 가격이 보장되는 농사를 짓고 싶다. 우리 주에는 총장님과 같은 농민 협조자가 계셔서 도움을 받고 있다. 

인도의 인구가 13억 명이다. 하지만 농업 생산량이 많이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수출을 했으면 한다. 인도의 농민들은 먹고 살 정도의 농사는 다 짓고 있어 큰 바람은 없지만 나라에서 농민을 위해 더 챙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