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어제가 4.19였네..

나는 85학번이다. 85년, 전두환 정권은 이미 망쪼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야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새파란 신입생의 눈에 비친 전투경찰은 무시무시하기가 야차같았다.  

그 해 수유리 4.19 묘지, 유인물을 살포하려던 누군가는 구호 하나 제대로 외칠 틈도 없이 제압당해 어디론가 끌려가고..   

나는 오금 저리는 전경 숲을 헤치고 기골이 장대한 사복경찰 틈바구니를 지나 잔뜩 주눅이 든 채 4월 영령들 앞에 섰다. 

기념식이 어떠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학교에 돌아와서는 스크럼 짠 선배들 틈에 섞여 신발끈 동여매고 교문으로 달렸더랬다. 처녀출전..

팡! 팡!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노란 깡통을 넋 놓고 바라보다 하얀 분말 뒤집어썼다.

숨막혀 죽을것 같은 고통 속에서 눈물 콧물 쥐어짜며 데모같은거 절대 안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착한 학생 될란다 다짐했었다. 

어제일처럼 선명한데 30년 세월이 흘렀다. 

당시 나에게 4.19는 까마득한 옛날 일이었다. 

그런데 그 4.19보다 더 많은 세월이 흘러버리고 말았다. 

 

우여곡절이 왜 없었겠는가만은 지금 우리는 박정희 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모시고 산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했다. 하지만 무단한 단순반복이 아닐 터..

4월 18일 광화문 투쟁에서 나는 분노한 민중의 역동하는 힘을 보았다. 

맨몸뚱이의 시민, 청년, 학생, 노동자, 농민들이 철옹성같은 국가권력의 철벽을 뚫었다. 

그 자체로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를 보는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 틈새 너머 무너져내리는 불의한 국가권력이 보였다.  

비록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하였고 투쟁의 선두에 과감히 몸을 던지지는 못했지만 역사발전에 대한 나의 믿음은 한결 단단해졌다. 


4.18 광화문투쟁





광범위하게 물샐틈없이 쳐놓은 차벽을 뚫고 광화문 광장에 진입했지만 더 이상 갈 길이 묘연했고 군중들은 무기력해보였다. 

"옛날같았으면.." 하는 따위의 헛된 상념에 잠겨 있던 차에 군중들이 움직였다. 

약한 고리에 대한 집중공략 끝에 맨몸뚱이 사람의 물결이 벽을 넘어뜨렸다. 

폭력시위 운운하는 경찰의 호들갑은 잡소리에 불과하다. 

켑사이신과 물대표, 채증과 연행을 앞세운 국가공권력의 폭압을 뚫어낸 것은 오직 맨몸뚱이의 민중들이었다.  



당황한 경찰들이 물포를 쐐대지만 그야말로 물포일 뿐이다. 



다시 차벽, 저 벽을 뚫어야 하나가 된다. 
우리민족 고유의 줄다리기 전법이 동원된다. 
앳된 처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진다. 
"우리가 이산가족이냐?" "폭력경찰 물러가라"


길이 열리자 당황한 경찰들이 다시 물대포를 난사한다. 

하지만 이는 정권의 종말을 앞당기는 스스로에게 퍼붓는 헛된 물장난에 불과하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밤하늘에 솟구치는 물줄기가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