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산에 가서 자고 싶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그저 그냥 심사도 복잡하고 요상시랍고 그럴 때..
9시, 밤이 이미 깊었다. 
목적지는 억새봉, 대략 40여분 잡는다.

억새봉, 쓰리봉.. 이 봉우리들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억새봉에는 이제 억새가 없다. 봉우리 전반의 잡목과 억새를 제거하고 잔디를 심어 잔디봉으로 만들어버렸다.
페러 글 라이딩하는 사람들의 소행이다.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시나브로 파괴 행위가 지속되고 있다.
급기야 산꼭대기까지 스멘트 포장길이 깔리고 최근에는 바로 옆 벽 오봉까지 할딱 벗겨졌다. 
여기에 더해 산악자전거까지 가세하여 억새봉 일대를 까고 뭉개고 있다. 

쓰리봉은 방장산 능선 정읍 쪽 끝자락에 있다. 
이짝 능선은 바위가 많아 조망이 잘 터진다.
내장산에서 백암산으로 흐르는 호남정맥과 전북 서부 평야지대는 물론 곰소만 일대와 칠산바다를 한꺼번에 다 건너다보고 내려다볼 수 있다.
방장산 아래 신림 들판, 가평 사람들은 써레봉이라 부른다. 
써레봉 일대 산봉우리들이  써레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해서 써레봉이라 한다 들었다.
그런데 왜 쓰리봉인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방장산 일대에 많은 폭격을 퍼부었는데 이 놈들이 써레봉을 쓰리봉이라 발음했고, 그것이 지금의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해명이 있다.
그럴싸하다. 사실이라 치자. 그런데 방장산은 그저 통으로 방장산이지 봉우리 이름을 이래저래 구분해서 불러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쓰리봉이라 이름 붙여 팻말 혹은 말뚝을 박아놓은 사람 혹은 집단의 소행에 있다.    
그 이정표가 거기 그렇게 박힘으로 해서 그 봉우리는 비로소 등산객들 사이에 쓰리봉으로 알려지고 불리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국적불명의 지욕스런 이름을 바로잡을 일이다. 

낙엽 수북하다. 눈 살짝 깔리면 사람 여럿 잡겄다.

산을 오르는 사이 없던 구름이 자꾸 생겨나더니 반나마 자란 달을 삼켜버렸다. 

 

벽오봉, 여기는 오랫동안 그저 600 고지라 불렸다. 
이 말뚝이 박히면서 이제는 모두가 벽오봉이라 부른다. 
이 말뚝을 박은 사람들이 쓰리봉이라는 말뚝도 박았다. 
예전 팻말을 대체하는 새 말뚝을 박은 사람들, 이 사람들을 찾아봐야 쓰겠다. 

억새봉이  수난을 겪는다. 뽕아리에 차가 올라와 있다. 
욕이 연발로 나온다. 어떤 상노모 새끼가.. 저 씨벌노모 차를..
그래 여기까지 차를 끄시고 올라오고 싶더냐 물었더니 아침 일찍 빼겠다 한다. 

기분은 잡쳐버리고 도저히 여기서는 못자겠다.  
고창읍내 잠시 내려다보다 다시 길을 잡아 나선다. 

 

방장산 정상 아래 조망데크에 자리를 잡고 나니 자정이 넘었다. 
잠 잘 오라고 커피 한잔 땡기고 곧바로 새벽까지 내쳐 자버렸다. 
새벽이 왔다. 하늘을 보니 구름짱 두텁고 확률은 낮지만 비가 온다는 예보까지 떠 있다. 
6시 반, 아직 새벽이지만 짐들 꾸려 하산길에 나선다.  
내려가서 또 열심히 싸워야지..
세상을 바꾸자고..

 

 

다시 억새봉, 해 돋을 시각이 되었지만 역시 해는 보이지 않았다. 
어제 나 지나가고 차를 내려놓은 모양이다. 텐트만 동그랗다.  

벽 오봉 쑥부쟁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학률 30%짜리..
만인이 비를 기다릴 때는 쌩까기 일쑤더니 이제는 터무니없이 낮은 확률에도 여지없이 비를 뿌린다.
하긴 저번 날에는 없던 비도 만들어내더라.
문 심뽀여 대관절..

화시산 너머 선운산 경수봉, 오른짝에 소요산

 

등산로와 임도, 산악자전거 길이 복잡하게 얽힌다. 

갈미봉, 양고살재로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방장사 옆 대숲

생전 가야 염불소리, 목탁소리 한번 내는 법 없는 절간에서 문 대자보를 내붙였다. 
일체유심조 어쩌고 저쩌고.. 모를 소리다..
'노느니 염불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 절간 중은 뭐하고 노는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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