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굼지오름과 모슬포 일대를 흘러 다니다 열리로 돌아왔지만 네시까지 오겠다던 집주인은 감감무소식이다. 

한숨 자고 일어나 배낭에 꾸려온 화산도를 꺼내 읽는다. 

화산도 10권, 얼마 남지 않았던지 금세 다 읽고 말았다. 

"....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병에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이방근이 산중 게릴라들을 조직적으로 섬에서 탈출시킬 것을 암중모색하는 가운데, 제주도 출병을 앞둔 여수 주둔 14 연대 봉기 소식이 전해진다. 화산도 10권은 그렇게 끝났다. 

다시 살풋 잠이 들려는 찰나 집주인이 돌아왔다. 집주인이 곧 차주인이다. 

주인을 돌려세워 집을 나선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목적지는 '높은오름', 꽤 멀다.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마지막 밤을 위하여..

 

네비 따라 찾아온 높은오름, 차는 이내 돌아가고 나만 홀로 남았다. 

10시가 넘었다. 깊은 어둠 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후두두둑.. 어둠 속에서 새가 난다. 사람 놀래키기는..

새가 더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오밤중에..

그런데.. 길이 묘연하다. 있는 길 따라 걸어봤지만 영 아니다.

이 길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겠다.  

공동묘지가 오름 입구라 했는데..

지도를 정밀 검색하고 내 위치를 확인하니 서로 반대편에 있다. 

지도를 아무리 키워봐야 연결된 도로도 없다. 

대략 난감, 어쩔 수 없다. 공동묘지 방향으로 몸을 세우고 걷는 수밖에..

돌담이나 가시철망이 길을 가로막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저 걷는다. 

이 길이 과연 사라지지 않고 다른 길과 연결될까 몹시 염려되었지만 다행히 시멘트 포장길이 나오고 그 길은 공동묘지와 연결되어 있다. 

인자 되얐다. 

 

 

 

공동묘지 입구에 도착했다. 

꽤 오랜 시간을 방황한 줄 알았는데 불과 20분, 오름길은 정상을 향해 쪼꼿허니 곧추 뻗었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정상에 서니 무지막지한 바람이 불어와 순식간에 땀을 날려버린다. 

높은오름이라 하나 20분이면 오르더라. 비고 150미터..

 

 

산불감시초소 옆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멀리 해안가의 불빛들.. 구좌읍 방향이 되겠다. 

높은오름에 봉화가 오르면 저 불빛들이 봉화를 반겼을 것이다. 1948년..

 

 

늦은 저녁, 소주 한잔..

밤새 무작스런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찌그러진 텐트가 가슴을 압박할 지경..

텐트가 통째로 날아가는 꿈을 여러 차례 꾸고서야 아침을 맞았다. 

 

 

고요한 아침? 아니다. 바람 디지게 분다. 

바람 많은 화산섬, 제주의 본때를 보여주겠다 작심이라도 한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 다랑쉬는 고요하기 짝이 없다. 

 

 

한라산도 보이고..

 

 

 

오름 왕국에 아침이 밝아온다. 

내 높은오름에 오른 까닭은?

그래.. 다랑쉬 너머 뜨는 해를 보고 싶었다. 방향은 살짝 어긋났지만.. 

하지 무렵이 되면 해가 좀 더 다랑쉬 쪽으로 이동하겠다. 

 

 

해가 뜨는 동안 능선을 두 바퀴 돌았다. 

 

 

높은오름의 굼부리는 깊지 않다. 
굼부리 안의 작은 돌탑들..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돌탑을 쌓더라. 

무엇을 염원했을까?

 

 

 

이제 내려갈 시간, 바람이 다소 잦아들었다. 

짙은 운무가 몰려와 시야를 가린다. 마치 비라도 내릴 듯..

 

 

 

오름과 오름 사이, 길을 걷는다. 타박타박..

 

 

용암이 흐르다 멈춰 굳어버린.. 이런 지형을 너분숭이라 한다 했는데..

저 너머 봉긋한 것이 높은오름이다. 

 

돗오름, 다랑쉬오름
 

 

동검은이오름을 오른다. 굼부리가 세 개. 복잡하게 생겼다. 

나무 한그루 없는 풀밭이었다는데 나무가 뒤덮고 있다. 

인근 높은오름, 다랑쉬오름도 그렇고 많은 오름들의 공통점인 듯..

 

 

동검은이오름 기슭의 애기오름(오름새끼), 이구류(화산 폭발 때 용암류가 분출하면서 토사 따위가 흘러내려 쌓인 것)라 하더라.

봉긋봉긋 작은 무덤처럼 보이는데 제주 사람들 여기에 무덤을 썼다. 묏자리 좋기로 손꼽히는 곳이라 한다. 

언제 저 길 한 번 걷고 싶다. 타박타박..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손지오름, 용눈이오름..

저기 멀리 지미봉과 우도가 보인다. 

 

 

 

높은오름

 

오름 왕국 저 멀리 한라산이 버티고 있다. 

 

 
높은오름,  돗오름, 다랑쉬오름

 

오름에서 내려와 점심을 때우고..

 

 

 

다시 걷는다. 타박타박..

찻길을 찾아 내려가니 백약이오름이 나오고 그 앞에 버스정류장..

백약이오름은 바글바글 사람이 들끓는다. 잠깐 사이 딴 세상..

버스를 타고 제주시로 나와 동창생을 만나 술 한잔 하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한라수목원을 배회하다 뱃시간에 맞춰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관덕정 앞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객실에서 한숨 시들었다 갑판에 나오니 추자도를 지나고 있다. 

제주여 안녕.. 다시 보더라고.. 조만간..

이제 곧 추억이 되어버릴 5월의 제주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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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산(바굼지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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