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보탑산 봉우리에 노을은 불타고
연하강 물결 위로
달빛 흐르네
봄바람은 평탄한 벌판에 불어 가고
많은 산들은 견고한 장벽을 이루었네
~아 연안 장엄하고 웅위한 古城
여기 저기서 항전의 노랫소리 울리네
~아 연안 뜨거운 피가
너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네
천만 청년의 마음 적들에 대한 원한 품었네
산야와 논밭의 길고 긴 행렬에서
견고한 전선을 이루었네
보아라 군중들은 이제 머리를 들었노라
무수한 사람과 무수한 마음
적들에 대한 
분노와 포효를 하고 있네
사병들은 총구를 겨냥하고
적들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네
~아 연안 장엄하고 웅위한 성벽
견고한 항일의 전선을 구축하였고
너의 이름을 만고에 남길 것이며
역사에서 찬란하게 빛나리

정율성 님의 延安頌

 

중국에 다녀온 홍규형이 남긴 두 개의 작품, <김산의 아리랑> 그리고 <延安頌>
중국 혁명에 바쳐진 두 조선인의 불꽃같은 삶을 목판에 새겼다. 

예술가는 다르다. 언젠가 제주도 여행을 함께 하고 홍규형은 4.3을 주제로 한 작품, <'4.3' 오늘 우리는 산에 감수다>를 남겼다. 
줄창 술만 먹었는데, 그래서 나는 술병만 남았는데 예술가는 작품을 남기더라. 

단편적인 신문기사 말고 정율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하여 책을 사서 읽어봤다. 허나 국내에서 출판된 책에는 편견과 억측이 많았다.  
혁명가이자 작곡가, 정율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알아볼 수 없게 했다. 
그러다 찾았다. 
정율성의 혁명 동지이자 아내였던 정설송의 책임 아래 중국에서 편찬된 책, 아내와 딸의 육성이 나오고 함께 했던 동지들의 회고와 증언으로 이뤄진 <작곡가 정률성>. 
중국에서 출간된 책을 가감이나 윤색 없이 국내에서 다시 출판(1992년) 한 것이다. 
헌 책방을 뒤져서 찾았다. 비로소 혁명가 정율성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책이다. 

 

중국 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 정률성은 1918년 8월 13일 전남 광주 양림정에서 출생하여 전주 신흥중학교에서 공부한 후 1933년(15세)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조선의열단의 조선혁명 간부학교를, 1937년(19세) 연안에 도착하여 섬북공학과 로신예술학원을 졸업했다.
1939년(21세)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후 1941년(23세) 정설송과 결혼하였으며, 1945~1951년에는 당의 결정으로 조선에서 활동하였고 조선전쟁이 폭발하자 '항미원조전선'에 참여하였다.
이후 중국에 다시 돌아가 정열적인 음악활동을 하였으며, 1966년 문화 대혁명으로 창작의 권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1976년 '4인무리'가 분쇄되어 기쁨 속에 창작준비를 하다 12월 7일 뇌일혈로 서거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연안송(1938, 연수요(1939), 팔로군 대합창(1943), 조선의용군 행진곡(1943), 조선인민유격대 전가(195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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