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달맞이
새끼들이 오지 않으니 추석이라고 할 일이 없다. 이게 그런 것이로군..
정성을 다해 공 들여 벌초한 것으로 모든 것을 가름하고 이것저것 다 작파해 버렸다.
그런 줄 아시겄지 뭐, 코로나 세상인데..
배낭과 침낭을 챙긴다.
여기저기 곰팡이가 펴 있다.
빨랫줄에 널어놓고 이리저리 뒤적이며 한참을 말렸다.
주섬주섬 챙겨 길을 나선다.
조개골과 쑥밭재 언저리에서 달뜨기재 너머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겠다는 나의 일념은 꽤 집요하다.
작년에 봐 둔 곳이 있다.
16시 30분, 윗새재 마을에서 산으로 든다.
잠시 길을 잃었다.
작년에도 그랬던 자리, 유념하면서 길을 살폈는데도 같은 자리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빨리 제 길을 찾았다.
급경사 오름길 칙칙한 산죽밭을 헤쳐 오른다.
다 왔다.
해발고도가 1,200미터에 달한다.
능선에서 내려온 운무가 주변을 휩싸고 돈다.
콸콸콸 물이 흐르고..
이 주변 어딘가에도 분명 비트가 있었을 것이다.
은신할 필요가 없는 나는 계곡 암반 위에 자리를 폈다.
잠자리를 마련하는 사이 구름을 뚫고 달이 올라왔다.
구름 때문에 달뜨기 능선이 잘 가늠되지 않는다.
내 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그 밤과 같이 별은 반짝이고
이 밤도 그대는 싸움터에서
원쑤 향해 세찬 불을 뿜겠지
사랑하는 그대를 만난 지
열 번 달이 뜨고 졌건만
그대 사랑하는 마음 변함없이
승리하고 돌아오라
북두칠성 반짝 빛을 뿌릴 때
그 별빛 아래 내 서 있으리라
향기론 바람 불어가거든
내 그대를 그리는 줄로 알라
그대 돌격의 함성이 높을 때
나의 실물레 소리 끊임없네
그대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승리하고 돌아오라
'그 때 그 자리 그 사람들'과 오늘을 사는 나의 호흡을 일치시켜 본다.
전화기가 터지지 않는다.
임방규 선생님의 빨치산 전적지 답사기를 펴 들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반달곰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꿈이다.
실컷 잔 것 같은데 겨우 11시, 중천에 뜬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구름에 달 가듯이 잘도 가더라.
긴긴밤 어찌할까 걱정했으나 다시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내 다른 건 몰라도 잠은 잘 잔다.
새벽 4시경 잠에서 깨었다.
부시럭부시럭 이것저것 볼 일 보고 잠시 책을 읽다 보니 동쪽 하늘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샛별이 영롱하게 마지막 빛을 발산하고 있다.
해는 웅석봉 너머에서 올라왔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하산을 시작한다.
길게 누운 달뜨기 능선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냈다.
머루가 지천이던디 갈 길이 멀어 댓 송이 따먹고 말았다.
맛나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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