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집에서 하룻밤, 차를 끌고 서울에 올라온 게 얼마만인지 참 낯설고 두렵다. 

행여나 차 막힐세라 이른 새벽 탈출을 감행한다. 

5시 반, 이른 새벽이라 하나 날은 이미 밝았고 차들은 벌써부터 꼬리를 문다. 

나는 지금 계룡산으로 간다. 

기나긴 장마 통에 잠시 볕이 난다 하니 그 짬에 산도 오르고 예정된 회의도 치를 요량이다. 

 

 

동학사 입구, 대략 두 시간가량이 소요되었다.

네댓 시간 정도의 짬을 확보했다. 

어느 길로 올라 어떤 능선을 탈 것인가? 주릉을 조망할 수 있는 황적봉을 골랐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찾아 대강의 산행 계획을 머릿속에 입력하고 들머리를 잡아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김밥 두 줄, 생수 1리터를 챙겼다. 

 

신선봉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장쾌하다. 
 오른쪽 장군봉
뒤로 병풍바위

20여분쯤 올랐을까, 바위가 나타나고 조망이 터진다. 

구름 좋고 바람 시원하다.

용용하게 사진기를 꺼내 들었으나.. 아뿔싸 메모리 키드를 안 찡겨왔다. 

갑자기 배낭이 무거워진다. 

새건 나비건 눈에 띄지 말지어다. 

전화기가 있어 위안이 된다. 

 

정면 멀리 우산봉, 신선봉, 갑하산

계룡산 골짝골짝 사람들이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도덕봉, 백운봉, 동일계곡

계곡을 둘러친 산줄기가 마치 요새, 옹성 같다. 

 

관암산, 산을 넘는 민목재

 

 

꼬마 비얌 한 마리 건조하고 시원한 그늘에서 몸을 말린다. 

똬리를 틀고 공격 태세를 취하는 녀석, 기럭시는 짤롸도 엄한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좀 더 오르니 군사시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천황봉과 휘하 연봉들이 나래비 선 주릉이 쫙 펼쳐진다. 

이걸 보자고 황적봉 능선을 오르는 모양인데 어인 일인지 이 짝 능선은 비탐 구간이란다. 
내 한참을 올라오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이와 관련한 안내판은 없었다.

 

황적봉

조망도 없고 표지석도 없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는 다소 으시시한 경계석만 덩그러니 서 있다. 

 

 

황적봉 지나 내리막길, 어제의 빗방울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잎사귀들이 볕을 차단하고 옷을 적신다. 

조망이 터지지 않는 숲길은 내내 이렇다. 

 

 
 
 

계룡산 안창과 바깥 고라당, 저 멀리 대둔산..

사면팔방 거칠 것이 없다. 

 

 
 

천왕봉(?) 너머 벼랑바위 부근에서 끼니를 잇댄다. 

 

천황봉-쌀개릉-자연성릉-삼불봉

약간의 암릉과 아찔한 벼랑이 동반된 바윗길 내리막, 위험 구간에는 믿음직한 밧줄이 매어져 있다. 

이 내리막을 지나 동학사 계곡으로 내려가면 시간이 얼추 맞아떨어지겠다. 

 

 

구름바다 저 멀리 내가 아는 대둔산, 운장산에 덕유산까지 보인다 하나 내 눈으로는 식별 불가. 

 

 
벼랑바위
동학사가 내려다 보인다.
 
 

암릉이 끝났다. 위험해 보이나 위험하지 않다. 

 

 

눈 앞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면 천황봉으로 직행하여 주릉을 탈 수 있겠으나 시간상, 체력상 계곡으로 내려선다. 
길은 뚜렷했다가 희미해지고 때론 놓쳤다가 다시 찾기를 반복한다. 

별 어려움 없이 동학사 계곡에 당도할 수 있었다. 산행 끝!

다음에는 천황봉을 바라보고 직등하여 천단과 쌀개릉 자연성릉으로 이어지는 주릉을 답파하는 걸로 예약을 걸어 놓는다. 

 

구름 좋던 날 계룡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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