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귤암리, 먼 길을 달려 갖은 버섯에 멧돼지 머릿고기와 소주 여러 병을 해치웠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늦잠을 잤다.

2시 반에 알람을 맞췄더랬는데 4시, 버섯 국물에 밥 말아먹고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하늘재, 네비의 도착시간을 마구 경신해가며 새벽길을 달린다. 

평창, 영월 지나 제천 거쳐 단양, 백두대간 벌재 넘어 문경 땅에 들어서니 동로면..

왠지 귀에 익은 지명, 지도를 들여다보니  이번 구간 도착지 차갓재 아래 안생달 마을이 지척이다. 

산행이 끝난 후 이동 문제, 차량 회수 문제로 겁나 고심했더랬는데 한방에 정리가 된다. 

안생달 마을 깊숙이 차를 두고 적어둔 동로개인택시(010-433-3103) 불러 하늘재로, 택시요금 3만 원.

 

07시 45분, 하늘재 출발.

포암산 베바위가 힐끗 보인다. 

 

등산로에 알밤이 굴러 다니며 가는 발길을 붙잡는다. 

 

마치 무너진 성벽 같은 너덜지대를 지나 하늘샘에서 목 축이고 본격적인 오름길, 잘 정비된 사다리를 밟아 오르며 고도를 높인다.

 

 

얼마 오르지 않아 조망이 터지기 시작한다. 

거대한 성채 같은 주흘산이 눈길을 사로잡고 마패봉에서 부봉 지나 탄항산으로 이어지는 지나온 대간길이 가늠된다. 

 

 

하늘재 아래 문경의 산하가 너울너울~

 

마패봉에서 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 깃대봉이 뾰족하다. 

대간에서 살짝 비켜 있어 그냥 지나쳤더랬는데 올라볼 걸 그랬다.

 

 
 

조망이 마구 터지니 시간이 지체된다. 

밤중에 지나온 탄항산은 존재감이 미미하구만..

 

 

드디어 월악산 방면 조망이 터지고 월악 영봉이 눈에 확 들어온다. 

오른쪽 바위 허연 만수봉 지나 월악으로 가는 능선이 이어지나 보다. 

보고 또 보고.. 당겨보고 밀어보고..

 

08시 50분
 

구절초는 대부분 시들고 쑥부쟁이가 절정이다.

 

 
09시 55분

포암산을 지난 대간은 주로 내리막길로 한참을 조망 없이 진행한다. 

가을이 짙어지는 산길을 내리 걷고 올려 걷고..

대간은 마골치에서 월악산 만수봉 방향 정규 등로와 결별한다. 

여기는 비탐 구간, 마골치 지나 조망 없는 무명봉에서 다람쥐처럼 앉아 쥐밤을 까먹는다. 

밤은 역시 쥐밤이 맛나다. 

 

포암산도 어느새 지나온 산이 되어버리고..

 

좀처럼 터지지 않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조망이 제한적으로나마 잠시 열렸다.

눈 앞에 꼭두바위봉, 저 뒤에 대미산일 것이라 생각했다. 

대단한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꼭두바위봉은 저기 능선 중간쯤, 대미산은 쩌 산 너머에 숨어 아직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저 건너 운달산

 

주흘산 너머 백화산

 

누가 누구를? 아마도 맹금이 멧비둘기를 잡수신 흔적인 듯..

 

정말 좋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신 것으로..

 

11시 50분 꼭두바위봉 부근 조망대, 하늘재(계립령) 오르는 길이 내려다 보인다. 

무려 2천 년 묵은 오래된 길 되시겠다. 

점심을 해결하고 시간 가늠을 해본다. 

전체 구간의 대략 1/3 지점, 출발이 늦은 만큼 갈 길이 멀다. 

속도전으로 남은 구간을 돌파하는 것으로..

다행히 조망이 터지지 않는 숲길은 유순하기 짝이 없다. 

 

 

봉우리 아래 너덜강, 간만에 조망이 터진다.

포암산, 만수봉, 월악 영봉을 비롯해 지나온 대간길이 선명하다.

 

 

마패봉, 깃대봉, 부봉 등이 완전 눈 아래 깔리고 포암산 아래 하늘재가 온순하다. 

 

13시 30분

대미산이라 여겼던 봉우리에 당도했다. 

지도상 봉우리 이름이 없다. 있을 법 한데.. 

바위에 뭐라 써 놨으나 판독 불가. 

1032봉이라 표기된 지도가 있긴 하더라. 

 

드디어 대미산, 오서 오라 손짓한다. 

 

저 건너 운달산

대미산 오르는 길은 생각처럼 수월치 않았다. 

다 왔다 싶으면 숨은 오르막이 다시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보상이라도 하듯 정상 직전 숨 막히는 조망터를 숨겨 뒀더라. 

자칫 지나칠 뻔한 조망대에서 가슴 벅찬 산하를 굽어보는 호사를 누린다. 

아침나절의 청아한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언제 어느새 두툼한 구름장이 낮게 깔렸다.  

 

중미산 너머 운달산
문경시 방면, 좌운달 우백화

 

예천 방면
남쪽
14시 50분

정상은 조망이 없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15시 10분

갈림길, 대미산으로 외약짝으로 방향을 튼 대간길이 다시 오른짝으로 방향을 튼다. 

 

 

잡목 우거진 헬기장에 물매화가 곱게 피었다.  

 

16시 25분

대미산 지나 차갓재에 이르기까지 조망이 터지는 곳이 없다. 

산길도 한결 유순해지고 속도 내기는 그만이다. 

여기가 백두대간 남한 구간 중간지점이라네. 

 

어떤 냥반 산행기에 송전탑을 지나면 다 온 거나 다름없다 쓰여 있었다. 

다 왔나 보다. 

빗방울은 여전히 떨어지지만 소리만 들릴 뿐 한 방울도 맞지 않았다. 

숲이 다 가려주더라. 

 

 

차갓재 직전 백두대간 중간 지점이 하나 더 있더라. 

좌우튼 이 근방이 중간은 중간인갑다. 

 

투구꽃 들여다보고 마지막 오름길을 오른다. 

 

구들의 흔적, 위치나 모양이 묘하다. 

누가 언제 여기에 구들을 놓았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전화기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대간 길에서 벗어났다네.. 어째 산길이 갑자기 희미해졌다 싶더니 약 100여 미터 벗어나 있다. 

 

17시 25분, 작은차갓재

비탐 구간을 벗어나 작은 차갓재에 당도했다. 

대략 1,3km의 하산길로 접어든다. 

 

날이 꽤 짧아졌다.

숲에 옅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대략 21km에 달하는 산길을 10시간에 돌파했다.  제법 준수하군..

피곤한 줄 모르겠다. 

5년 전 파죽지세로 대간을 오르내리던 감각이 되살아난 듯..

 

집까지 3시간 반, 문경시내에서 저녁 먹고 쉼 없이 달려 나무보일러 불 지피고 물 데워 씻고 나니 자정이 다 되어간다. 

다음 구간을 머릿속에 그려 넣으며 나른한 잠 속으로 빠르게 빠져 들어간다.

 

20201011하늘재-작은차갓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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