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령에서의 하룻밤, 참으로 잘 잤다. 

그런데 늦잠, 산에서도 늦잠이라니..

주섬주섬 짐 챙기고 누룽지 한 사발 끓여먹고 나니 6시 20분, 길을 나선다. 

 

저수령은 해발 850m, 낮지 않은 고개다. 

그 옛날 길이 험해 길손들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침략자들은 목이 달아났다 하여 저수령이라네. 

안내판에 그리 쓰여 있더라. 

 

죽령까지 20여 km, 해발 고도 1천 미터를 넘는 고봉 준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대간꾼을 맞아 힘차게 뻗어나간다. 

곳곳에서 터지는 장쾌한 조망은 대간 산행길의 묘미를 더해가다 도솔봉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죽령 너머 육중한 소백산 주릉은 다음 산행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하니 백두대간 종주 구간 중 참으로 빼어난 구간이 아닐까 싶다. 

 

약간의 어둠만이 남은 숲길에 상쾌한 첫발을 내딛는다. 

촛대봉, 투구봉, 시루봉 모두 1천 미터를 넘는 봉우리들이지만 그리 힘들이지 않고 수이 오르게 되는데 조망은 투구봉에서 터진다. 

 

06시 50분

촛대봉에는 촛대바위가, 투구봉에는 투구바위가 있더라. 

 

이른 아침 안개를 뚫고 간간이 해가 보인다. 

 

투구봉에서 해를 본다. 

그 아래 험산준령, 백두대간이 잠에서 깨어난다. 

 

07시

여기도 소백산 자락으로 보는 것인가?

욕심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투구봉 부근 투구꽃

 

해 돋는 방향, 산들이 너울너울~

외약짝 맨 뒤 희미한 일월산, 그 앞은 아마도 청량산..

 

07시 30분

하늘에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잣 따는 사람들, 아스라이 나무 꼭대기에 올라 기나긴 장대를 내두르며 힘겹게 잣송이를 털고 있더라. 

가평 사람들이 원숭이한테 잣 따는 일을 시키려다 실패했다는 영태 말이 생각나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잣나무 아래 얼쩡거리다가는 오해받겠다 싶어 신발끈도 안 보고 총총 갈 길을 간다. 

그래도 조심하시라는 인사는 남겼다.

 

사부작사부작 낙엽 밟는 소리 상쾌하다. 

 

깊은 계곡 너머 흰봉산과 도솔봉, 언제 저기까지 갈까나..

 

저 멀리 희미하게 우뚝 솟아 눈길을 잡아 끄는 산, 

이모저모 거듭된 검토 끝에 일월산이라 결론을 봤다. 

저 높이로 솟아 있을 산이 이 방향에서는 일월산(1,219m) 뿐이더라. 

 

08시 45분

사과가 꿀맛이어라. 

 

09시 20분

대간을 넘는 송전탑, 전기 쎈 놈 흐르는가 겁나 크고 높다. 

 

10시 40분
11시 30분

산길 하나 갈라져 나가고..

 

도솔봉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과거 조난사고가 있었다는 이유로 겁 겁나 주더만.. 지나보고 나니 좀 심하다 싶다.

 

묘적령 지나 묘적봉이라 생각한 바위에 올라 주변 경계 휘~휘 둘러보고 점심을 해결한다. 

실제 묘적봉은 좀 더 높은 곳에 있더라. 

한 숨 잘까 했으나 늦잠을 잤으니 그냥 가는 것으로..

오늘 대간 길은 거대한 말발굽.

 

드디어 묘적봉, 도솔봉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저기 뒷쪽 바윗덩어리가 도솔봉 정상

 

영주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지나온 길 한눈에 보이고..

 

저기 멀리 일월산

 

고개를 돌리니 소백산 주릉이 한눈에..

 

기가 흘러들 듯 영주시 방면으로 흘러내리는 산줄기들..

 

걸어온 길 돌아보고 또 돌아보노라니..

 

어느새 당도했다.

여기가 바로 도솔산 정상, 사면팔방 막힌 곳 없더라. 

 

걸어온 길과 가야 할 길이 마주 보고..

 

대간에서 살짝 비켜 선 흰봉산이 늠름하며..

 

죽령이 내려다 보이고..

 

죽령 너머 소백산 주릉이 한눈에 잡히는 곳, 그곳에 도솔봉이 있더라. 

 

어느새 도솔봉을 돌아본다. 

오늘 발걸음 참으로 가벼웁다. 

 

저 아래 죽령..

다 왔다. 

 

죽령에 닿는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번도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내려간다. 

매우 드문 편안한 하산길..

 

16시 30분

왜 죽령이지? 산죽이 많아 죽령인가? 따위 생각을 하며 산길을 내려왔는데..

이 길을 개척한 죽죽이라는 고대 선인의 이름을 딴 것이었네. 

얼마나 힘들었던지 길을 개척하고 그만 순직했다는 것이다. 

계립령이나 죽령이나 거의 같은 시기에 개척된 장구한 역사의 고갯길, 한때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으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던..

 

죽령주막의 음식은 깔끔하고 맛났다. 

막걸리는 꿀맛이었고..

 

그림자가 질어졌다. 

서산 일락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단양 쪽 버스는 3시 55분이 막차, 이미 떠나고 없다. 

대강면 택시 검색하여 저수령으로, 20여 분 기다리니 택시가 올라오더라. 

택시요금 31,200원, 미터기 요금 그대로 받았다. 

저수령 오르는 택시 안에서 들었다. 

중앙고속도로 개통되기 전 죽령은 영주, 봉화로 저수령은 예천, 안동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였다네. 

명절 때가 되면 저수령을 넘는 차량이 장사진을 치고 고갯마루 김밥장시 하루 매출이 천만 원을 넘기기도 했다는 것이다. 허나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차량이 모다 그 짝으로 빠지면서 한적한 도로가 되고 휴게소는 폐업하고..

속도 위주 도로 개설의 역기능을 본다. 

 

대간길 어느 한 곳 빠지는 곳 있겠는가마는 이번 산길 참으로 빼어나더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다. 

 

20201017저수령-죽령.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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