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지원 101호, 초조하게 판결 기다린 사람들

구자환 기자 / hanhit@vop.co.kr

4일 동안 계속된 간절한 바람이 2008년 마지막 날 이루어졌다. 지난 28일부터 사천과 진주에서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법원 선고판결을 앞두고 100여명이 3보1배를 진행하며 무죄판결을 소원해왔다.

강기갑

31일 오후 2시,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강기갑 의원의 선거법위반 선고판결이 예정된 시간이었다. 이날도 사천시민들과 민주노동당 당원, 농민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간절한 기원을 시작했다.

찬바람에 손이 시리고 무릎이 에이는 날씨다. 진주시 교육청에서 3보1배를 시작한 100여명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인도로 성큼성큼 세걸음을 내딛고 멈추고는 이내 도로바닥에 머리를 숙인다. 인도를 지나치는 시민들과 차량에서는 호기심어린 눈빛이 쏟아진다. 그들의 가슴팍과 등 뒤에는 ‘강기갑을 살리자’는 몸벽보가 걸려있다.

4일 동안 빠짐없이 3보1배에 참가했던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강 대표가 무죄선고 돼서 이 나라의 사법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 전반적으로 우울한 소식이 가득한 이 때, 여기서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소식이 전해져, 한 해를 보내는 시점에서 모든 사람들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농부경연맹 제해식 의장도 “MB가 정치검찰을 앞세워 탄압하더라도 법원은 제대로 국민과 민족에게 부끄럽지않은 판결을 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3보1배
  • 방청객들로 부터 환호를 받는 강기갑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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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30분, 약 1km의 거리를 지나 이들은 진주지원에 도착했다. 이미 법원 앞은 강기갑 의원의 선고판결을 지켜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이 중에는 무죄판결을 희망하며 달려온 부산, 울산, 경남 대학생연합 소속 학생들 50여명도 줄지어 서서 공판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김민철씨(부산대.4년)는 “강기갑 의원을 법원에 세우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가 죽었다”면서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사천에서 선출된 강기갑 의원을 지켜내기 위해 여기를 찾았다”고 했다.

강기갑 의원을 지키기 위해 1박2일의 농성을 기획했던 ‘반쥐원정대’도 선고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디 ‘상큼방랑자’는 “선고 결과가 걱정스럽다”면서 "전반적으로 국민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상식적으로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재판 역시도 보복수사에 대한 판결이 나올까 두렵다"고 했다.

선고판결을 앞두고 우려는 이어졌다. 사천에서 왔다는 제아무개씨(68세)는 검사의 구형이 말도 안된다고 성토했다. 그는 “선거때 뇌물을 받은 것도 아니고 상대방을 비방한 것도 아닌데 선거운동원 모두가 실형(벌금)을 받은 것이 어처구니 없다”며 “법원이 오전에 종무식을 하고 업무를 보지 않는 오후시간에 선고판결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우려했다.

 
  • 법원판결후 환한 미소로 화답하는 강기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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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공판 시간이 되자 학생들과 방청객들이 진주지원 101호법정 입구 앞에 줄지어 섰다. 이윽고 ‘강기갑’을 연호하는 소리와 함께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분하고 질서정연하던 법원이 갑자기 아수라장이 됐다. 지지자들과 손을 맞잡는 모습을 담으려는 방송카메라와 기자들의 몸싸움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 혼란 속으로 “정의는 승리합니다” “강기갑” “강기갑” 을 외치는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법원건물을 울렸다.

101호 법정은 방청객들로 가득차 발디딜 틈이 없었다. 끊임없이 방청객이 밀려오자 결국 법원에서 이후로 들어오는 방청객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법정내부의 앞줄 의자에는 강기갑 의원과 선거운동원들이 앉았다. 법관들이 입장하기를 기다리는 10분, 실내는 조용한 침묵만이 흐른다.

3인의 재판장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곧이어 판결에 대한 선고가 시작됐다. 재판장은 2008년 2월29일 삼천포사회복지관에서 개최된 민주노동당 집회에서 ‘강기갑 우리는 그를 믿습니다’라는 책자를 배포한 데 대해 “당원들에게 교부하였다고 하더라도 통상적인 정당활동의 범주에 속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어 집회개최에 의한 사전선거운동 혐의와 교통편의 제공에 의한 기부행위 및 기타 방법에 의한 사전선거운동 혐의에 대해서도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판결내용을 듣고 있던 방청객 사이로 “저게 무슨 판결이고...” 라는 불만이 마침내 터져나왔다.

침묵만이 감도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법원은 “ ‘공직선거법에서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입법취지를 고려하고 이 사건의 집회가 당원집회라 하더라도 집회의 내용, 개최시기, 그 규모 등에 비추어 피고인에 대한 지지를 권유, 호소하는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는 점들을 감안할 때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여야 한다”고 판결했다. 기소됐던 혐의 모두가 유죄로 판결을 받자 방청객들은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짧은 불만이 신음으로 터져나왔다.

판사는 이어 유죄에 대한 양형을 선고했다. 선거 사무장에게는 250만원, 선거운동원들에게는 최고 300만원의 실형이 선고됐다. 그 사이로 방청객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굳어졌다. 판사는 이어 강기갑 의원에 대해서도 양형을 선고했다. 다들 굳게 입을 다문 모습이었다.

“국회의원으로서 선거운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야 하는데도....당원집회라 하더라도 내용과 시기, 취지로 봐서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됨으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합니다.”

순간 방청객들의 입은 모두 굳게 잠겼다. 탄식마저 잊은 채 주위엔 조용한 적막만 흘렀다. 법관의 선고는 이어진다.

“다만 처음부터 개입하였다는 증거가 없고...비당원의 참석 문제에 대해 보좌관에게 문의하고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문을 받은 점, 3월8일 집회가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당선 무효형을 선고하는 것을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 강기갑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합니다.”
이 말이 떨어진 순간 ‘강기갑’을 연호하는 우렁찬 외침과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양형선고가 진행중인 가운데 성질 급한 이가 밖을 향해 외쳤다.
“이겼습니다.”

이 한마디에 미처 입장하지 못하고 밖에서 대기하던 지지자들은 ‘강기갑’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했던 진주지원은 갑작스럽게 박수갈채와 서로를 축하하는 인사말로 소란스러워졌다.

3보1배
  • 강기갑의원이 지지자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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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보1배
  • 강기갑을 지키는 반쥐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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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 의원이 법정을 나서자 방송카메라와 기자들이 순식간에 에워싸고 가로막았다.
강기갑 의원은 비장한 목소리로 법원의 판결에 의미를 부여했다.

“사법부가 독립적인 판단을 한 결과다. 열심히 서민과 민중을 위한 양심적인 정치를 해달라는 판결이다. 지금까지 지지해준 국민들과 12만 사천시민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