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울릉도 마지막 날. 
우리의 계획은 대풍감 일대를 둘러보고 태하령 옛길을 넘어 남양까지 걸어가 버스 타고 사동으로 이동하여 배를 타는 것이다. 
6시 30분, 꽤 서둘러 숙소를 나선다. 
밤사이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면서 그쳤다. 구름 많은 좋은 날씨다. 
흠뻑 젖어 빨아둔 옷과 신발도 보송보송 잘 말랐다. 조짐이 좋다. 

대풍감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우선 태하 등대로 올라야 하는데 등대 인근까지 데려다주는 모노레일은 운행을 하지 않는다. 
일대가 공사 중이라 어수선하다. 이 역시 지난해 태풍 때문이다. 
걸어서 오른다. 가파른 길이지만 거리가 짧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목적지는 향목 전망대, 등대와 맞닿아 있다. 
전망대에 이르니 바람이 분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한 바람이 바다로부터 절벽을 타고 올라와 온 몸을 훑는다. 
어디 바람뿐인가? 기묘한 해안절경과 망망대해를 바라보자니 오욕칠정이 사라지고 오장육부가 다 후련해진다. 

 
 

오늘날 대품감(待風坎)이라 불리는 이곳은 선대의 기록에서는 대풍소(待風所), 대풍구미로, 1882년 고종의 명을 받아 울릉도를 답사한 검찰사(이규원)는 대풍포라 기록하였다. 
대풍감이라는 지명은 '조선지형도'(1917년)에서 등장하는데 이 지도는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것이다.  
대풍감은 일제가 고안해낸 지명이다. 

 <조선지형도>에 와서 ‘구미’를 ‘坎’으로 일괄 치환하여, ‘사태구미’를 ‘사태감’으로, ‘대풍구미’를 ‘대풍감’으로, ‘황토구미’를 ‘황토감’으로 바꾸었다. ‘坎’은 구덩이의 의미를 지니므로 ‘구미’의 의미와는 다르다. 일제가 ‘구미’를 ‘坎’으로 바꾼 것은 ‘구미’와 발음이 유사한 한자 표기를 강구하려다 고안한 결과로 보인다. 
- 울릉도 마을 지명의 형성과 고착 과정(유미림 한아문화연구소)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았으면 좋겠다. 지명의 유래와 역사적 사실을 따져보면 대풍구미가 가장 적당하다고 본다. 
대풍구미는 '육지(고향)로 돌아가기 위해 바람을 기다리던 곳'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대부분 전라도 흥양(고흥) 지방의 어민들이었다. 
1882년 검찰사 이규원이 섬에서 만난 조선인은 140명, 이 중 전라도 사람이 115명이었으며 이들은 흥양 어민들이었다. 이들은 "춘삼월 동남풍을 타고 울릉도에 들어와 새 배를 만들고 가을 하늬바람이 불면 목재와 미역, 고기를 가득 싣고 고향으로 돌아갔다".([울릉도 오딧세이, 전경수 지음]에서 인용)

섬을 비워두고자 했던 조정의 의도와 달리 백성들은 대대로 섬에 드나들며 삶을 이어왔다. 
이런 까닭으로 울릉도 토속 지명에 전라도 흥양 방언이 토착화되었고 그중에 하나가 '구미'인 것이다. 

현포리

송곳봉과 노인봉, 바닷속 공암, 현포항이 보인다. 
우리는 향목 전망대에서 바다 쪽으로 좀 더 나아갔다. 
그곳에 전망대가 두 개 더 있다. 

 

하늘에 매가 떴다. 
대풍구미 부는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는가 하면 먹잇감을 쫓아 쏜살같이 급강하한다. 
바람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아는 녀석들의 비행이 참으로 멋있다. 
세 마리가 날아다녔는데 다 어린 녀석들이다. 아마도 올해 태어난 한 식구들인 듯.. 
세 녀석들이 하늘을 가르며 옥신각신 공중 발차기도 하고 사냥 연습을 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봤다.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향나무

대풍구미 바위 절벽에 자생하는 향나무, 자생지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공암, 코끼리바위 

코끼리바위가 왜 공암일까 했더니 구멍 뚫린 바위라 공암이라고..

울릉장구채 

울릉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 울릉도 특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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