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산 달맞이
올 겨울 유난히 눈이 없더니 대보름날 눈이 내렸다.
눈이 쏟아지다 해가 나왔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날씨 속 방장산이 허옇다.
하얀 산이 당기는 힘은 매우 강력해서 감히 거역할 수가 없다.
그래 오늘밤은 방장산에서 자자고, 구름 사이 흘러가는 대보름달도 볼 겸..
주섬주섬 짐을 챙겨 산에 드니 이미 어둠이 짙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고 커다란 보름달은 구름과 구름 사이를 담박질 친다.
눈 쌓인 능선길 걸어 벽오봉까지 한 시간 하고도 20여 분, 제법 거대해진 고창읍내의 불빛이 휘황하다.
읍내만 커졌다.
달구경도 잠시, 몸 식을세라 서둘러 천막을 치고 안으로 든다.
바람이 심하지 않다. 눈이라도 나리면 좋으련만..
라면 하나 끼래 복분자술 한 잔, 탱자술 한 잔 번갈아 마시다가 잠을 청한다.
이미 밤이 깊었다.
새벽 세 시, 눈보라가 제법이다.
사부작사부작 눈 나리는 소리 끊이지 않더니 눈이 좀 쌓였다.
내심 폭설을 기대했으나..
불빛 사그라들고 아침이 밝아온다.
잠에서 깨어나는 게다.
서둘러 내려가야 하는데 좀 늦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길을 나선다.
방장산에는 예부터 산적들이 많았다 한다.
산적들에게 붙들려 간 아녀자가 구하러 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며 불렀다는 방등산가가 가사 없이 내력만 전해온다.
벽오봉이라는 이름은 벽오라는 유명한 산적 두목이 있어 그의 이름을 따 벽오봉이라 했다는 얘기를 단 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고창 주변이 바다였을 때 오동나무를 싣고 가던 배가 벽오봉에 부딪쳐 난파된 뒤 오동나무가 자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해설이 있는 바 이것이 좀 더 그럴싸하다.
조선 민족의 썰에 이 정도 웅혼한 기상은 서려 있어야 맞다.
아무도 가지 않은 숫눈길을 간다 생각했거늘 나보다 선행자가 있었네..
누구일까? 이 발자국의 주인공은..
야동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담비라는 답을 얻었다.
보폭이 상당하여 작은 녀석은 아니다 싶었다.
발자국이나 똥 말고 실제로 담비를 보는 날은 언제쯤일까?
임인년 대보름 달맞이는 눈과 함께 방장산에서..
봄이 오나 했으나 잠시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치고 있다.
늦은 한파가 꽤 오래 가네.
고창에는 이후로도 두어 차례 눈이 더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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