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음력 4월 26일) 농민군은 용머리고개 아래 전주 삼천까지 진격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이튿날, 농민군들을 장꾼들과 함께 무혈입성했다.

이때는 4월 27일(양력 5월 31일) 전주 서문 밖 장날이라. 무장, 영광 등지로부터 사잇길로 사방으로 흩어져 오던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함께 섞여 미리 약속이 정하여 있던 이날에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이미 다 시장 속에 들어왔었다. 때가 오시(오전 11시 - 오후 1시)쯤 되자 장터 건너편 용머리 고개에서 일성의 대포소리가 터져 나오며 수천 방의 총소리가 일시에 시장판을 뒤엎었다. 별안간 난포 소리에 놀란 장꾼들은 정신을 잃어버리고 뒤죽박죽이 되어 헤어져 달아났다. 서문으로 남문으로 물밀듯이 들어가는 바람에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같이 섞여 문안으로 들어서며 한편 고함을 지르며 한편 총질을 하였다. 서문에서 파수 보는 병정들은 어찌 된 까닭인지를 몰라 엎어지며 자빠지며 도망질을 치고 말았다. 삽시간에 성안에도 모두 동학군의 소리요 성밖에도 동학군의 소리다. 이때 전봉준 대장은 천천히 대군을 거느리고 서문으로 들어와 좌(座)를 선화당(감사의 집무실)에 정하니 어시호 전주성은 이미 함락이 되었다.(오지영 동학사)

서문 밖 민가에 불을 질러가며 저항하던 전라감사 김문현은 피난민 복장으로 변복하고 멀찌감치 공주로 달아났다.
전주성 함락 소식에 경악한 조정은 농민군 토벌 계획을 세우는 한편 청나라에 조회문을 보내 파병을 요청했다.

하루 사이로 농민군을 뒤쫓아온 경군(홍계훈)은 용머리고개를 넘어 완산에 진을 쳤다. 이어 홍계훈은 자신의 경군과 증파된 강화영병, 감영병 등 1,500여 군사를 건지산, 기린봉, 오목대, 황학대 등에 배치하여 전주성을 에워싸고 곧바로 전주성을 향해 포를 쏘아대며 싸움을 걸어왔다.

4월 28일,
"완산에 결진하고 성내에 포를 쏘았을 때, 적도들이 서남 양문을 열고 수천 명이 일시에 뛰쳐나와 남문의 적들은 남쪽으로 올라오고, 서문으로 나온 적은 산의 서쪽으로 올라오며, 성내에 있는 적들은 성루 위에 한 줄로 서서 끊임없이 포를 쏘아 탄환이 비 오듯 하였다"
4월 29일,
농민군이 북문을 열고 황학대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5월 1일,
"적도는 남문으로부터 출격하여 미전교(싸전다리)를 건너 남.북 2대로 나누어 완산 주봉의 관군을 목표로 돌진하였다. 남쪽 일대는 순창 가도로 나가 오른쪽으로 돌아 남고천을 건너 곤지산 서쪽 벼랑의 계곡을 타고 북진하고, 북쪽 일대는 전주천 왼쪽 언덕으로 북진하여 완산정으로 들어와 곤지산 북쪽 벼랑의 계곡으로부터 주봉으로 올라와서 남쪽의 우군과 합하여 주봉 서쪽에 솟은 검두봉의 조그만 구릉에 포진한 관군 일대를 습격하였다. 이로써 일거에 완산을 도륙하고 본영에 핍박하려고 기도하였다."
5월 2일,
경군의 전주성 포격에 맞서 농민군이 서문을 열고 나와 용머리고개의 관군을 공격했으나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물러났다.
그리고 5월 3일,
완산 전투 최대의 격전이 벌어졌다.
그날 농민군의 진격로를 따라 길을 잡아 나선다.

전주성을 차지한 농민군은 선화당을 접수했다.
옛 도청을 허물고 복원한 선화당에서 출발한다.

서문 방향 골목길, 도연맹 사무실이 이 근방 어디에 있었을 텐데 알 수가 없다.
오래된 일이고 골목길이 많이 변했다.

농민군이 입성한 서문 터, 차이나 타운이라는 길바닥 표식만 찬란하다.
패서문이라 불리던 서문은 일제강점 초기 왜놈들이 철거해버렸다. 

그렇다네..

서문을 나선 농민군은 사마교(다가교)를 건너 황학대를 공략하여 북문을 나와 유연대를 공략한 농민군과 호응했을 것이다.

유연대 방면, 북문을 나선 농민군은 저 아래 전주천을 건너 유연대에 주둔한 관군을 공격했다.
협공을 받은 유연대 주둔 관군이 남쪽으로 달아났다. 

다가산 방면, 농민군은 유연대와 황학대의 관군을 내쫒고 다가산을 점령한 후 용머리고개를 향해 진격한다.

다가교 건너편에는 신흥 중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신흥학교는 3.1 만세운동에 주동적으로 나서고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에 맞서 자진 폐교했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80년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에 맞선 신흥고 학생들의 항거를 기념하여 표지판을 달아놓았다.

학생들의 5.27 항거를 기념하여 건립한 '오이칠정', 정자 아래 바위에 '황학문'이라는 암각문이 있다 하여 찾았으나 덩굴식물이 뒤덮어 보이지 않았다.
이 부근을 황학대라 불렀다는 징표..

신흥학교를 돌아 나와 다가산으로 향한다.
90년대 초반 이곳 다가공원에서 농민대회가 열렸다.
공원이 터져나갈 듯 빽빽하게 들어찼던 농민들, 연사들의 연설에 귀 기울이던 심각한 농민들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연하게 떠오른다.

다가산에 올라 전주천 너머 성내를 내려다본다.
전주천이 해자처럼 전주성을 둘러싸고 있었나겠다.. 

다가산 정상, 다가산은 매우 작은 산이지만 왜놈들은 전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에 신사를 세우고 참배를 강요했다 한다.
신사가 서 있던 곳에는 이제 호국충혼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라를 지켰다니 그런 줄 알아야지..

다가산에서 용머리고개는 지척이다.
다가산을 점령한 농민군들은 곧바로 용머리고개를 향해 짓쳐 들어갔을 것이다.
용머리고개 너머 완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성황당이라도 있었을 법한 고갯마루에서 능선을 타고..

용머리 고개 방면, 완산 주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외칠봉이 줄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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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파고든 허름한 주택가 좁은 골목길 지나 용머리고개를 건넌다.
차가 쌩쌩 넘나드는 용머리고개, 신호등의 비호 아래 안전하게 건넜지만 그 옛날 고개를 가로질러 완산 주봉을 향해 육박해 들어가던 농민군들은 관군의 강력한 반격에 직면한다. 농민군은 이곳에서 용장 김순명, 아기장수 이복용을 비롯하여 200~500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내고 성안으로 물러난다. 이때 전봉준 장군도 왼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는다. 이날 전투는 오후 6시경에나 끝났다. 이날 전투를 마지막으로 농민군들은 더 이상 관군과의 교전에 나서지 않았다. 전주성을 차지했으나 잇따른 패전으로 농민군의 사기가 크게 꺾였다.

나는 여기서 완산 주봉(장군봉)을 지나 초록바위를 거쳐 싸전다리 건너 남문으로 입성할 계획으로 산길을 이어간다.
완산에 주둔한 관군을 섬멸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개선했어야 할, 그러나 가지 못한 농민군 진격로, 가고자 했으나 가지 못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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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 주봉인 장군봉, 용머리고개에서 불과 900여 미터..

전주부성을 향해 뻗어 내린 내칠봉 끄트머리 너머 경기전과 풍남문, 선화당이 한눈에 잡힌다.
갑오년 그 시절에는 남문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까지, 그 위에 늘어서 완산을 노려보던 농민군들까지 한눈에 잡혔을 것이다.

반대편 모악산 방면, 모악산 너머애는 농민군들의 강력한 근거지이자 든든한 배후 원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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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군 전주 입성비 지나..

몇 개의 봉우리 거쳐 동학농민혁명 녹두관 들러..

곤지산에서 내려다본 풍남문과 경기전 일대, 멀리 빌딩 숲 너머 건지산이 보일락 말락..

품남문

경기전이 전동성당의 위세에 눌려 찌그러져 있다.

싸전다리

산에서 내려와 싸전다리를 건넌다.

남문시장

승리하고 돌아와 탁배기 한 잔씩 시원하게 들이켜는 농민군들의 왁자한 웃음소리 낭자한 남문시장을 상상해본다. 
선지국이 땡겨 찾았으나 없다.
더불어 탁배기도 포기하고 터덜터덜..

풍남문

임대 안내문 내걸고 문 닫아 건 가게들이 즐비한 을씨년스러운 구도심을 지나..

다시 선화당.
전투에 나선 농민군 발자취 따라 절반,
종일토록 싸우고도 가지 못한 길 절반,
도상 거리 7.8km 약 20리 길,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완산 전투, 다섯 차례 전투에서 농민군 600~800명이 희생되었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기간은 열흘, 짧은 기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근대화된 관군 무기와의 화력 차이가 불러온 피할 수 없는 뼈아픈 결과였다.
그러나 관군과 농민군 어느 쪽도 결정적 승기를 잡고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으니 이는 당시 조성된 복잡했던 조선 정세와 깊이 연관돼 있었다.
농민군은 6월 11일(음력 5월 8일)'신변보장과 폐정개혁안 접수'를 조건으로 관군과 화약을 맺고 전주성에서 물러나왔다.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채..

완산전투_현장답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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