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티 혈전 이후 농민군 주력부대가 남쪽으로 퇴각하던 시기 대둔산을 근거지로 유격 항전을 개시한 부대가 있었으니 금산, 진산, 고산 등지의 농민군들이었다. 

이들은 우금티 전투 이전 <죽산에서 진천, 청주, 금산으로 남하하면서 충청도 농민군을 섬멸하기 위해 이동하던 일본군 ‘중로 분견대’>를 맞아 금산, 진산 등지에서 치열한 매복 기습전으로 맞섰으며 일본군이 우금티로 몰려간 이후에는 관군이 몰려오면 사라졌다 떠나가면 다시 나타나는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이 대둔산에 근거지를 마련한 것은 12월 초순(양력) 퇴각하는 농민군 주력부대가 논산에서 전투를 치를 즈음이었다. 이로부터 이듬해 2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70여일에 걸친 대둔산 항전이 시작된 것이다.

대둔산은 천 길 낭떠러지 허다하고 기암괴석 즐비한 험준한 바위산이다. 대둔산 석도골 미륵바위 정상에 근거지를 마련한 항전 지도부는 수시로 산에서 내려가 진산, 연산 등 각처의 농민군과 연계해 활동했다.

갑오년이 저물고 해가 바뀌자 충청감영이 움직였다. 1월 9일(양력 2월 3일)양총으로 무장한 영군 40명을 출동시켰으나 험준한 산세에 기가 질려 계곡 너머 능선에서 헛총질만 해대다 물러났다. 다시 민보군 300명이 몰려왔으나 허사였다. 이들이 물러나자 농민군이 몰려와 영군을 불러들인 군관을 처단하고 금산까지 진출하여 수성군을 공격했다. 1월 19일 다시 영군을 출동시켰으나 이번엔 대포만 요란히 쏘아댈 뿐이었다. 

일본군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장위영병과 일본군 3개 분대가 도착하여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1895년 1월 24일(양력 2웥 18일), 운명의 날이 밝았다. 이 날은 전봉준, 최경선, 손화중, 김덕명 등 농민군 주요 지도자들이 서울로 압송돼 일본영사관에 인도된 날이기도 하다.

18일 오전 3시에 야습할 계획이었으나 바람과 비가 심하고 안개마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어 동이 트기만 기다렸다. 오전 11시 10분경에 큰바람이 불어 안개가 걷히며 적의 소재를 볼 수 있었다. 적의 소굴은 큰 바위로 삼면이 뒤덮여 지붕만 겨우 보일 뿐이었고 큰 돌을 쌓아 정면에 총구멍을 내었다.
1시 40분, 세 방향에서 맹렬히 엄호사격을 가하게 하고 일본군 1개 분대와 한병 사관 두 명을 대동하고 산정에서 배후를 공격하기로 했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와 겨우 적의 소굴 뒤쪽 아래까지 돌진했다. 그런데 몇 길이나 되는 암석이 담벽과 같이 서 있어 전진할 도리가 없다. 사람 사다리를 만들어 한 사람씩 올라가게 하니 15분 만에 전 대원을 등반시켰다.
다행히 적은 산이 험준한 것만 믿고 배후는 고려하지 않고 전방의 한병을 향해 계속 발포하였다. 이 틈을 타서 불시에 소리를 지르며 돌격했다. 적은 25, 6명이 있었는데 대개는 접주 이상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했다. 또 28, 9세 되는 임산부가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 접주 김석순(金石醇)은 한 살짜리 여아를 안고 천 길의 벼랑을 뛰어 내리다 암석에 부딪쳐 박살이 나 즉사했다.
(일본군 특무조 보고문건 ‘대둔산 부근 전투상보’ 요약)

대둔산 최후 항전지는 기록과 구전으로만 전하다 100년도 더 지난 1999년에야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됐다. 대둔산 항전은 일본군 토벌기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어 최후항전이라 일컬어진다. 허나 새로운 항쟁의 불꽃이라면 모를까 어찌 이를 최후항전이라 할 수 있겠는가? 놈들은 최후라 이름짓고 종지부를 찍고 싶었겠지만 이후로도 농민군의 항쟁은 계속됐다.

1898년과 1899년의 영학당 봉기가 대표적이다. ‘보국안민’ ‘척왜양’의 기치를 내건 영학당 봉기를 통해 사라졌던 동학당 두령들이 역사에 재등장한다. 항일의병 투쟁의 근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농민군들이자 그들의 직계 후예들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외세에 맞선 민중들에게는 최후항전이 아닌 최종승리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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